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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Oct 30. 2021

무기력과 실행 사이에서 시소 타기

토피넛 라떼가 나왔는데 올해 난 뭘 했지?

며칠 전 회사를 다니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친한 동생이 혼자 보기엔 아까운 말을 남겼다.


“야근도 많으면서 언제 MBA 준비를 하고 있었대? 나는 요새 고민은 많은데 몸이 안 따라주고 무기력한데 넌 대단하다.”

“누나. 무기력과 실행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인생인 것 같아.”

“지금 술 마시고 있어?”


술기운 없이 맨 정신에 저런 명언을 하다니.

몇 달 전 만났을 때만 해도 앓는 소리를 했던 그는 퇴근 후 밤새 대학원에 낼 에세이를 쓰고 지원하고 있었다. 그를 보니 인생은 무기력과 실행 사이라는 말은 맞다. 친구가 ‘실행’ 차선을 타고 있는 지금 나는 ‘무기력’ 차선 위에 있다.


달력도 두 장밖에 남지 않아 해내지 못한 목록들에 마음이 초조해지는데 몸은 한없이 게으르다. 집과 차, 목돈이 들어갈 결정을 해야 하기에 최대한 손품을 팔아보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지 않아 초조하기만 하다.


올해 첫 토피넛라떼. 진짜 겨울이 오고있다.



WINTER IS COMING!


코끝에 겨울이 오니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딱 같은 온도와 바람을 맞으며 제주에서 18일을 보냈다.

한 달 살기가 하고 싶어 왔다가 되려 일 년 살이에 꽂혀 냅다 집을 계약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올해 1월에 짐을 싸들고 내려왔다.

제주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잘 맞았다. 일 년의 절반 가량이 지날 때쯤, 습기와 태풍으로 악명 높은 제주의 여름을 지내보고 내년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여름이 오기 전부터 우리는 제주에 계속 살기로 마음먹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요가를 배우고, 잔디와 귤밭이 예쁘게 펼쳐진 내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에 요가를 가르친다.

늘 키우고 싶던 개는 못 키웠지만 매주 가는 유기견 쉼터에서 만난 진도 믹스, 수박이를 두 달째 임시로 보호하며 대리 체험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수박이를 산책시키며 일 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상을 살아내고 있음에 놀랐고 감사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나와 남편은 유보해둔 고민(집, 차, 일, 애)을 하며 약간의 슬럼프를 겪고 있다. 일 년 사이에 사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된 남편은 영상을 올리지 않은지 몇 달이 됐다. 나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매일 올리던 네이버 쇼핑 상품을 일주일에 기껏해야 두 개 올릴까 말까 한다.


그 와중에 토피넛 라떼를 마시며 읽은 책에서 연예인에게 위로를 얻었다.


아마 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라고 나 자신에게 묻는 일이 많다.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혼자 이래저래 고민하는 것이 주된 일상인 요즘이라 더더욱 자주 그러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막막해진다.
빨리 뭘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태껏 살면서, 멋진 순간들은 다 내 의도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찾아왔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p231>



싸구려 커피를 히트시키고 아이유와 사귀었던,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연예인도 나와 결이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게 제법 위로가 된다.


회사는 다니기 싫은데 돈은 잘 벌고 싶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자신. 자산을 늘려나가고 자식을 키워놓은 친구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조바심이 난다.

동시에 '퇴사', '세계여행', '제주살이' 등 멋진 순간들은 계획과 무관하게 찾아왔다.


두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넘기며 의연해지기로 했다.

올해 계획했지만 하지 못한 많은 리스트 중 하나만이라도 하자고. 그러다보면 또 다시 생각지 못한 멋진 순간들이 찾아올 거라 희망하면서.


10월도 뭐 했는지 모르게 벌써 지났다며 아쉬워하지만, 우리는 또 그런대로 고군분투하며 잘 살아냈을거다.

모두들 10월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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