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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Feb 10. 2022

험난한 제주 이주의 길

오늘도 미니멀라이프를 다짐해보지만...

주간 백수부부 시즌7 11화. 글쓴이 아내(망샘)




내 집 마련을 못한 불안감도 있지만 원하는 장소를 골라 살아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작년 이맘때 책에 쓴 문장이다. 이번 이사를 하며 경솔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이사하며 짐 정리도 하고 새 공간에서 에너지도 얻으니 좋은 점도 많다. 하지만 자주 하기엔 시간과 비용의 출혈이 크다. 족히 백 만원 이상은 들고 다른 일은 못할 만큼 체력도 많이 요한다.


처음엔 하루 자고 떠날 팬션에 놀러온 듯 영 낯설고 정이 가지 않았다. 이사 5일째가 되서야 사람 사는 곳 같아졌다. 짐 정리도 얼추 끝났고 거실을 점령했던 박스 떼기와 뽁뽁이들도 거의 버렸다. 물론 책장과 옷장에 쑤셔 넣어둔 잡동사니와 안 입는 옷가지들도 정리하려면 족히 일주일은 더 필요할 것 같지만. 이사할 때마다 짐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이번엔 2.5톤을 바다까지 건너게 하다니. 쌓여있는 짐들을 보며 우리가 무슨 짓을 벌인 건가 아득해졌다. 섬으로 이사하는 건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이사와 동시에 모든 일상이 마비됐다. 일까지 할 정신은 당연히 없고 밤이 되면 녹초가 된다. 요가라도 하고 오면 훨씬 몸이 개운 할 텐데 그럴 시간에 짐을 하나라도 더 정리하는 편을 택했다.


남편에게 매일 트럭킹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더니 웃는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매일 500킬로미터가량 이동하며 밤에는 캠핑하며 잤던 때. 매일 몸이 찌뿌둥하고 힘들었는데 이번 이사도 비슷하다. 격한 육체노동에 매일 밤 열 시가 되기 전에 잠든다. 그나마 이사 전 사둔 한라봉을 매일 밤 까먹으며 비타민C를 충전한다.


결혼한 지 6년 차, 4번의 이사 중 이번이 역대급으로 강도 높았다. 반 셀프로 이삿짐을 옮겼고 살던 집도 깨끗이 청소하고 나오려니 두 배로 힘들었다.


첫째로, 있던 짐들을 포장해서 풀어주는 ‘포장이사’가 아닌 말 그대로 물건만 옮겨주고 끝난 ‘화물 이사’를 했다. 육지에서 서울로 가는 이사는 약 2배 정도 비싼 느낌이었다. 짐만 상하차 하는데 포장이사 비용만큼 견적이 나왔다. 짐을 풀고 정리하며 포장이사가 얼마나 편했는지 알게 됐다.


2년의 신혼 살림살이가 포장 이사하며 쌓인 그대로 있으니 짐만 옮기면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돈과 품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조립이 필요한 가구가 3개였다. 이사 당일, 구두로 계약한 바와 달리 3개 중 침대 하나만 조립해주고 내뺐다. (업체가 서울, 제주 두 군데였다) 옷장에 시스템 행거를 설치해야 하는 게 일이라 결국 현장에서 이사 비용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수고비를 지불하고 시간 없다는 그들을 달래 가며 끝냈다. 책장은 그냥 남편이 셀프로 조립했다. 그와중에 침대는 조립이 잘못됐는지 첫날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신혼 집에서 쓰다 1년 약정이 남은 인터넷을 다시 설치했다. 기계들은 아직도 비밀번호를 기억하고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전에 살던 집 청소. 사실 이사를 하면서 살던 집은 짐만 빼고 청소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열세 달 동안 지낸 전 집은 우리에게 선물 같았다. 집주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마치 내 집인양 때 빼고 광내며 청소했다.

풀옵션인 집에 한 차로 그릇, 이불, 옷만 가져온 줄 알았는데 짐이 그새 많이 늘기도 했다. 짐과 쓰레기를 나르기도 벅찬데 아직 입양을 가지 못한 수박이 견사도 해체, 다시 설치했다.


저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새로운 수박이의 산책길. 새 냄새가 좋은지 자주 미소를 보여준다.
현관 문과 안방 창 앞에 자리잡은 수박이. 더 자주 볼 수 있어 좋아졌다




좌우지간 네 번째 이사를 하며 버릴 것과 계속 가져갈 것들을 추려보니 삶의 우선순위가 뾰족해진다.

혹시 몰라 가져온 회사 다닐 때 입던 정장 스타일의 옷, 가방, 신발은 이렇게 제주로 이주한 이상 다시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언젠가 읽을 거라고 무겁게 들고 온 책도 지금껏 안 읽은 건 앞으로도 펼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손이 가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다음 이사를 위해 슬슬 보내줘야겠다.


3톤 이상의 짐과 함께 제주에서 시작하는 2막, 더욱 우선순위에 맞게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봐야겠다 다짐한다.



이사를 해보니 인테리어의 끝판왕은 러그와 액자, 조명이다. 작은 소품이 큰 가구보다 분위기를 살려준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두고간 TV에 케이블을 연결했더니 영화관이 따로 없다.
몸과 마음 정신이 없지만 아침루틴은 이어가려 노력했다
예전 집에서 모은 저금통도 잊지않고 열었다. 2480원이면 새우깡블랙 두 봉지 살 수 있겠다ㅎㅎ
전원생활 로망이었던 와인병 세우기의 폐해. 치우는데 고생스러웠다. 이젠 좀 줄여야지
전입신고를 마쳤다. 두 번째 제주도 주소다.
예전 집과 지금 집의 중간 지점인 신산리. 좋아하는 동네가 멀지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오늘도 물욕을 버리지 못하고 시내에 있는 7층짜리 다이소를 찾아갔다고 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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