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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Feb 14. 2022

내가 멈춰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이사짐 정리에만 9일이 걸린 백수부부. 이사하며 느낀 세상살이.

주간 백수부부 2022 시즌7. 12화 글쓴이 남편(파고)





"내가 멈춰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주말부터 글을 쓰는 오늘까지 꼬박 9일이 걸린 이삿짐 정리를 끝낸 소감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저렇게 말할 것 같다. 살림살이라고는 아내와 나 두 명의 짐뿐인데도 뭐 이렇게 오래 걸렸나 돌아봤다.


5일 토요일, 서울에 있던 신혼살림이 제주에 내려왔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장 등이 집에 설치됐다.


6일 일요일, 상자째로 덩그러니 놓여있던 짐들을 풀어 각 방에 풀기 시작했다.


7일 월요일, 살던 집에서 짐을 완전히 빼야 하는 날. 원래 살던 곳을 나온 상태 그대로 원상복구 하기 위해 최대한 신경을 썼다. 우리 집도 이렇게는 청소를 안 할 듯 하지만 고마운 집주인분들을 생각하며 정말 깨끗하게 청소했다. 임시보호중인 수박이 집도 철거해서 새로 이사갈 집에 설치했다.


우리의 첫 제주 1년살이 집. 모든 것이 좋았지만 거실에 긴 책상에서 아내와 둘이 같이 작업할 수 있던 책상이 있어 더 좋았다.
1년 전 이사왔을 때 모습 그대로 모든 패브릭은 빨래를 하고 주방도 아주 깨끗이 청소했다.


8일 화요일, 새집에 인터넷과 가스레인지를 설치하고, 부족한 인테리어를 꾸며줄 여러 소품을 다이소에서 샀다. 원래 살던 집에 가서 수박이가 있던 자리를 원상복구 시켰다. (다행히 집 주인분들이 11일 금요일에 내려오신다 하여 이후에도 몇 번 더 방문해서 집을 정리했다)


안방 행거와 옷장도 1년 전 모습 그대로 다시 원상복구.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기존 집을 청소하느라 몸이 두배로 힘들었다


안방 창문 옆으로 보이는 데크에는 수박이 집이 설치됐다. 조그만 인기척에도 우렁차게 짖는 수박이 덕분에 잠을 푹 못잔다



9일 수요일, 집 정리를 도와주기 위해 장모님이 오셨다. 제주 시내에 있는 무려 7층 단독건물을 사용하는 다이소에 방문해서 집에 필요한 물품들을 또 샀다. 설날 연휴부터 무려 일주일을 휴강했던 과외수업을 재개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진행한 첫 수업이었다.


10일 목요일, 무려 일주일 만에 아침 요가수업을 들었다. 매일 허리를 숙여 짐을 나르고 정리하느라 온몸이 뻐근했는데 오랜만에 느낀 시원함이었다. 우리가 요가를 간 사이 장모님이 옷방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다. 아마 우리가 했으면 하루는 족히 걸렸을 거다.


어머님 찬스로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된 옷방. 그 많던 짐이 마법처럼 정리됐다


아내도 새집에서 첫 번째 요가수업을 했다. 수업이 있는 동안 안방에 유배(?)되신 장모님은 그사이 광목천을 손수 바느질해서 난해한 인테리어 때문에 우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실 공간을 러브하우스로 변신시켜 주셨다.


새로 이사온 곳에서 수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던 아내. 다행히 생각보다 통창으로 보이는 풍경도, 집 내부도 아늑하다.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부터 가장 눈에 거슬렸던 거실과 주방 사이의 나무 가림막. 옆에 계단을 광목천으로 가리고 나니 훨씬 보기가 좋다.


10일 금요일, 유기견 봉사를 다녀온 뒤 유리창을 청소했다. 집이 지어진 뒤로는 한 번도 안 닦았는지 창틀과 유리창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더러웠다.

전 세입자가 사용하던 스카이라이프 선반도 해체했다. 다이소에서 사 온 렌치 덕분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다이소에서 산 렌치 덕분에 책상과 탁자도 우리가 원하는 사태로 개조할 수 있었다.


11일 토요일, 장모님을 공항에 내려드린 뒤 제주 시내에 있는 비데 판매점에 들러 비데 설치에 필요한 부품을 샀고, 화원에 들러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작은 극락조와 몬스테라를 샀다. 모던하우스에 들려 화분도 샀다.


12일 일요일, 거실 책장에 마구잡이로 꽂혀있던 책들과 잡동사니 상자들을 정리했다.


열심히 유리창을 닦는 파고의 모습. 유리창 청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노동이었다



무려 일주일하고도 이틀이 더 걸려서야 새집은 아늑한 집이 되었다. 9일 동안 우리 부부가 하던 거의 모든 일이 '잠시 멈춤' 상태가 됐다. 유튜브 영상은 일주일 동안 간신히 2개를 올렸고, 이삿날이던 월요일에는 과외수업을 연기했다. 아내 역시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들만 간신히 해냈을 뿐 평상시에 하던 대부분의 일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에서 잠시 멀어져 있어도 세상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빠르게 흘러갔다. 주식시장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반복했고, 코로나 확진자는 연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실적을 발표했고 대선 후보들의 2차 토론이 있었으며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선 중국에 대한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온 국민을 열받게 했다.


프리랜서로 살면서 어려운 점은 내가 멈춰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내가 일을 못 한다고 해도 세상은 그런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새해부터 빼곡하게 적어오던 나의 다이어리가 무려 9일이나 텅 빈 백지가 되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록을 미룬 결과다.

하지만 바쁘고 피곤할수록 기록을 남겨야 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내가 멈춰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잠시 멈췄더라도 기록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걸 이번 이사를 통해 느낀다.



인테리어의 끝은 역시 화분과 패브릭천. 보기 흉한 곳을 광목천으로 가리고 화분과 꽃을 두니 집이 화사해졌다.
이사짐 정리의 마지막 책장 정리. 드디어 길고 긴 집 정리가 끝이 났다



<지난 에피소드 읽기>


https://brunch.co.kr/@bellakwak/273


https://brunch.co.kr/@bellakwak/272




백수부부의 글은 월, 목요일 오전 8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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