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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Mar 07. 2022

40개월만에 남편이 수염을 밀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던걸까?

주간 백수부부 2022 시즌7. 18화 글쓴이 남편(파고)




수염을 밀었다.

3년 4개월 딱 40개월만의 일이다.

2018년 10월 31일.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던 날이다.

직장을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날이기도 했다. 나에게 수염을 기른다는 건 이전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매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회사로 출근하던 직장인의 삶에서 당장 내일 어디에서 잘지, 어디를 여행할지 모르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삶으로의 변화. 수염은 이런 삶의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작년 1월 제주에 내려오자 마자 했던 인터뷰. 친구가 제주 독립서점을 여행하다 우리 얘기가 나와 반가웠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2022년 3월 1일. 수염을 잘랐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의식을 치르듯이 면도를 했다. 4년 만에 수염이 없는 내 얼굴을 본 아내는 신기해하면서도 아쉬워했다. 나조차 수염이 없는 내가 어색하고 낯선데 내 얼굴을 나보다 더 자주 볼 아내는 그런 감정이 더 했으리라.


수염을 자른 이유는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세계여행에서 귀국한 지 어느덧 만 2년 우리는 더 이상 여행자라는 말보다는 프리랜서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직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일 당장 어디서 잘지, 어디를 여행할지 고민하는 여행자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삶이지만, 더 이상은 여행자가 아닌 '제주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프리랜서'였다.



유기견 봉사활동을 매주 꼬박나간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같이 봉사를 하는 친구가 집에 초대를 해줘서 방문했는데 집이 너무 좋았다.


중문에 있는 <더 클리프> 발리에 있는 비치클럽을 본따 만든것 같았는데 아직 날씨가 추워 클럽 느낌은 들지 않았다.
뷰는 예쁜데, 가격도 사악했던 <더 클리프>. 아내의 블로그 리뷰어 찬스로 잘 다녀왔다.



그런 나에게는 자유의 상장이었던 '수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 금하는 수염을 길러도 되는 자유인이야"라고 온몸으로 증명하던 여행자 시절과 지금은 다르니까.

오히려 과외를 하고, 유튜브를 촬영하면서 사람들에게 더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깔끔한 인상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2년간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다보니 사실 학생들은 내 수염을 볼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4년만에 수염을 자른 내 모습. 처음엔 수염이 없는 내 모습이 어색했지만 일주일만에 적응완료.

수염이 없는 내가 어색해 다시 거울을 봤다. 수염은 없지만, 그 자리에 거뭇거뭇한 수염의 흔적이 뚜렷했다. 

수염은 더 이상 나에게 자유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수염을 기르지 않아도 우리가 직장에 메어있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라는 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졌으니까.


수염을 밀었지만 수염이 있던 자리에는 수염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우리의 삶도 지난 4년 동안의 직장인에서 세계여행자로, 다시 백수로, 그리고 프리랜서이자 제주도민으로 끊임없이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족적은 수염자국처럼 뚜렷한 흔적을 내 몸 어딘가에, 우리의 가치관 어딘가에 영향을 주고 흔적을 남겨두었을 거라 믿는다.






공교롭게도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던 날은 31일. 수염을 자른 날은 1일이다.

달력의 마지막 날이 끝나면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것처럼, 수염이 없어진 나의 삶에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인생을 채워나가야겠다.





제주살이 2년차. 이제 제주 지리는 웬만큼 익숙해져 이런 지도를 보면 한 눈에 어디가 어딘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한없이 파랗고 높았던 3월 주말 제주의 하늘. 저 멀리 성산일출봉을 보면서 매일 수박이와 이 길을 걷는다
지난주 친구커플을 만나려고 방문했던 <마음에 온>. 제주시에 있어서 자주 가기는 어렵지만 시내에 놀러간다면 가볼만 하다.
제주도민인 아내와 달리 아직 주소지가 서울인 나는 '관외'선거인인탓에 줄을 꽤 기다려야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이번주와 지난주 친구들을 너무 많이 만난탓에 괜히 목이 칼칼한 것 같아 처음으로 자가진단키트를 해봤다.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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