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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Apr 14. 2022

미루기 대마왕의 최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진짜였다.

주간 백수부부 2022 시즌7. 29화 글쓴이 아내(망샘)



나는 미루기의 달인이다.


가끔 찾아보는 내 책의 서평에서 ‘저자의 실행력이 대단하다’라는 문장들이 보인다. 감사한 말들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부지런하지 못하며 늘 실행력 좋은 사람들을 동경한다. 오늘의 할 일은 내일의 나에게 위임한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되는 건 제주도라고 다르지 않다. 가만히 기회가 뚝 떨어지진 않는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홍보 글이라도 한 줄 올려야 기회가 시작된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p243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된다’가 인생 격언이지만, 욕심에 비해 실행력이 달린다.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행복한 공상을 하지만 막상 밖으로 꺼내 실행한 것은 많지 않다.


지금은 튤립이 만개했다. 네덜란드 튤립축제가 부럽지않았던 보롬왓의 풍경



학생 때는 과제를, 직장인일 때는 할 일은 마감기한까지 딱 맞춰 제출하곤 했다. 일찍 해두고 후련하게 쉬는 게 좋다는 건 머리로 알고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기한을 넘기진 않는데 절대 며칠 먼저 끝내질 못한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요즘에도 미루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얼마 전 스타벅스에서 받은 '무료 음료 쿠폰'을 유효기간 이틀이 지나고서야 발견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 스타벅스가서 돈 주고 시켜먹었는데......


별 쿠폰의 아쉬움이 가시고나니 또 다른 상실이 찾아왔다.


평일 오후에 갔음에도 사람이 많았다. 다들 어떻게 알고 오는걸까?



스타트업 일을 하며 정부 지원 사업으로 바우처를 받아 듣고 싶던 인터넷 강의를 작년에 10개나 신청해두었다. 수강 기간은 140일. 넉넉해 보였지만 내가 누구인가. 미루기 대마왕은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강의를 묵혀두고 잘 보지 않았다. 그러다 만료를 2주일 남기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멤버십을 구독하면 수강 만료된 강의도 연장할 수 있다’는 마케팅 문구를 발견했다. 그래 이거다! 미루기 대마왕의 마음이 일순 편해졌고, 다시 사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수강기간이 만료된 지 한 달 후, 멤버십 구독을 결제하기 직전에 약간 싸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기업 바우처로 결제한 건 해당 안된다는 거 아닐까? 결제하고 안 된다고 하면 낭패인데. 바로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다.


이윽고 돌아온 답변은 청천벽력. 기업 바우처로 결제한 건은 수강 기간을 연장할 방법이 전혀 없단다. 그것만 믿고 안 봤는데 그걸 다 날리다니… 과거의 나를 몰아세워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내 돈 주고 다시 결제해 보기엔 아까웠다. 이런 방침을 세워둔 ‘클래스 101’이 너무 미웠다. 왜 멤버십 구독은 보여줘서 헷갈리게 했냐고요…


사실 유튜브만 봐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이긴 한데 괜히 못 본다니 서운하다. 미루지 말고 강의들을 보고 지식을 쌓았다면 오늘의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됐을까?


사실 미루고 후회한 게 또 하나 있지만, 이건 전화위복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잘 될 경우 나중에 풀어보기로 한다.


이렇게 또 한 번 미루기 대마왕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도대체 이 지독한 습관은 언제 고쳐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옛 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도 혹시 미루고 있던 일이 있다면 오늘 하나라도 해보자고요!



튤립뿐 아니라 오름을 배경으로 한 열무꽃도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 집에도 있는 틸란드시아. 미세먼지를 먹고 공기정화에 좋은 식물이란건 이날 처음 알았다.


자주 지나다니던 길에 있던 <보롬왓>에 처음으로 와봤다. 이렇게 멋진 카페가 있을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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