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형 인간 프로젝트 실패. 그렇다고 루틴까지 버릴 건가요?
주간 백수부부 2022 시즌7. 33화 글쓴이 아내(망샘)
루틴 실종
임신 사실을 알게 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새벽 5시 기상, 일기 쓰기, 영어 책 필사, 차 마시기, 아침 요가 수련. 건강한 루틴으로 채웠던 일상이 사라졌다.
‘루틴으로 시작하는 하루의 뿌듯함’보다 ‘몸과 마음의 안정’으로 우선순위가 변했기 때문이다.
다섯 달을 새벽에 일어났지만 알람을 끄니 기가 막히게 원래의 수면 패턴으로 돌아갔다. 오전 8시쯤 남편이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에 몸을 겨우 일으킨다. 잠드는 시간은 비슷하니 거의 열 시간씩 자는 셈이다.
임신 9주 차, 아직 입덧이 심하지 않고 공복에 메스꺼운 ‘먹덧’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저녁을 6시 전에 먹고, 새벽에 일어나 보이차를 마시고, 8시에 요가를 하고 와 10시에 아침을 먹는 16시간 이상 공복을 즐겼던 나는 이제 없다. 저녁을 먹고 10시쯤 잠들 때면 허기가 진다. 속이 느끼하니 마치 술 마신 다음 날 해장하기 전의 상태 같다. 몸이 이러니 루틴을 지키는 건 뒷전이 됐다.
‘무리하면 안 되니까’의 덫에 빠져 일도 많이 줄였다. 요가는 요청이 들어올 때만 수업하고, 부모님 일을 돕는 온라인 셀러 일만 겨우 하고 있다. 플래너에 빼곡히 써둔, 벌리려 작정한 일들은 그대로 답보 상태다.
초반에는 쉬면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쉬면 소는 누가 키울까. 지금은 조금 피곤할 뿐이지만 7달 후에 두 생명체가 나오면 아예 시간이 없을 텐데. 그럼 내년엔 뭐 먹고살아야 하나. 머리로 걱정은 되는데 몸은 그저 쉬고 싶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다시 폈다. 밀린 일기를 하나씩 써보기 시작했다. 사실 집에서 대부분을 보내는 요즘 일상의 모습은 비슷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럴 때면 휴대폰 사진첩 날짜를 보며 기억을 되살렸다. 매일 새벽 미주알고주알 써 내려간 일기는 이제 세네 줄 정도로 짧아졌지만 다시 어지럽혀진 일상이 조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거지. 루틴의 힘. 큰 힘 들이지 않고, 매일 하던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차분해진다.
꼭 루틴을 새벽에 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 기상이 루틴의 첫 단추라고 생각하니,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첫 단추부터 못 맞췄다 하고 다른 단추도 내팽개쳤다. 하지만 좀 늦게 시작하면 어떤가. 아침이 아니라 밤에 하면 어떠한가. 아무도 ‘루틴은 일찍 일어나서 하는 거야’라고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4월의 남은 3일 동안 다시 망가진 루틴을 재건시켜보려 한다. 뱃속의 생명체를 위해 여전히 긴 수면 시간은 유지할 테지만 깨어있을 동안 알차게 나와의 약속을 하나씩 지켜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