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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퇴사D-200]삿포로에서 퇴사를 외치다.

퇴사후의 삶, 오겡끼데스까

by 망샘


현 회사를 선택한 큰 이유중 하나는 인센티브 트립이라는 복지때문이었다.

영업 목표를 달성하면 4일간의 유급휴가와 2백만원의 여행경비를 지원해주는 몇 안되는 멋진 보상 제도. 그렇다. 여행을 좋아하는 대학생이 혹하고도 남을 그런 제도다.


그렇게 입사 후 4년만에 처음 가본 인센티브트립에서 역시 여행은 가족이나 친구랑 와야 좋은 것이란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하는 건 그 즐거움이 반감된다는 걸. 역시 사람은 뭐든 해봐야 알게 된다고.



Sapporo, 2018.03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운좋게 인센티브트립을 떠났다. 러브레터의 배경이었던 오타루가 있는 북해도.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던 여주인공에게 빙의하여 퇴사 후의 삶이 '오겡끼데스' (괜찮다) 일지 끊임없이 자문해봤다. 작년보다 마음고생은 덜 했지만 여전히 맞지 않는 사람들과 다니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욱하고, 하루만에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꽃보다할배 이서진이 이런 마음이었겠지?'

'아니 이서진은 돈 받고 촬영하는 거였잖아. 게다가 연기계에 평생 몸담으려면 대선배들에게 깍듯이 해야하는 태도는 내가 갖춰야할 그것보다 훨씬 더 그 무게가 있겠지.'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와이파이까지 연결시켜줬는데도 스마트폰 뒀다 뭐하고 자꾸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손가락있으면 제발 좀 물어보지말고 검색해주시면 안되겠니?!'



(무거운 눈을 지탱하고 있는 푸르른 나무가 마치 나같다며...)

Sapporo, 2018.03


우리 내년에도 잘해서 또 여행가자~


이렇게 말하는 그들의 말에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앞으로 함께 여행오는 일은 절대 없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에요. 지겨웠고 다신 보지말자^^'



팀장님이 내년엔 찢어져서 가지말고 다같이 가자는데~


'그러시든지요. 그때 저는 여기 없을거라서^^'


Biei, Sapporo, 2018.03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시점을 정해놨으니 망정이지 이곳에서 충성을 다할 생각이었다면 저런 말들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갑갑했을까 싶었다.

대학교도 4년이면 졸업하는 마당에 5년넘게 한 곳에서 같은 일을 하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같은 팀에서 같은 일을 20년간 한 사람들이 발에 채이는 마당에 나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는 게 자명한데, 현실적인 먹고사는 문제때문에 싫은 일을 참아가며 해내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빚내고 무리해서 산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야해서'

'아이들 학자금을 회사에서 지원받아야해서'

'아이들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어서'

.

.

.

저마다의 이유로 가면을 쓰고 하하호호하며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물론 나 또한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곳에서 가만히 있다 정말 가마니가 되어버릴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컴포트존을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던 인센티브 트립.



Sapporo, 2018.03


눈이 가득쌓여 갈 길이 보이지 않아도



Sapporo, 2018.03



길이 없다면 누군가 이렇게 길을 내면 된다.

그리고 이 길도 정답이었다고 표지판을 세우면 그만인 것이다.



Sapporo, 2018.03



안되는 건 없다.

비록 앞서간 사람이 없어 발자국이 없는 길일지라도. 내가 만드는 게 길이고, 정답일테니까.


Sapporo,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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