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같은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인수인계: 내가 하던 일을 넘기고 다른 일을 받는다.
하지만 퇴사를 하는 사람에게 '인수'란 없다, '인계'만 있을뿐. 꽤나 일찍 내가 하던 일을 받을 후임이 정해졌고, 팀장님이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준 덕분에 마음 편하게 내 일들을 넘기고있다. 처음엔 그냥 대충 넘기면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하나씩 가르쳐드리니 할 말도 많고 ,정리해야할 파일도 참 많다.
대충 넘기고 회사에서 노는 순간만을 기다려왔는데 막상 후임자가 너무나 착하고 좋은 분이셔서 대강 넘기기에는 마음이 좀 무겁다. 이 뼛속깊은 노예근성같으니라고...
예전에 한창 화가 많았을 때는 D-138일에서 100일을 앞당겨 퇴사하고 싶다고 썼던 것 같은데 어느새 눈깜짝할 사이에 이 회사에서도 38일만이 남았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별 것 안하고 별 일 없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 인계할 시간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내가 일했던 5년 3개월을 누군가에게 응축해 전달하는 건 꽤나 품이 든다. 동시에 내가 헛으로 일하진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퇴사 그리고 세계여행을 간다는 나의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고 용기있다고 한다. 하루하루 구려져 가는 회사와 사람들의 뒷담화를 하며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는' 내가 부럽다고 하면서도 '세계여행 후의 삶'에 대해 불안과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월급만을 바라보며 침몰해가는 배에 있는 것보다는 혹시라도 있을 황금을 꿈꾸며 다른 배로 갈아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퇴사D+1일에 쓰는 일기에선 이렇게 패기넘치는 문장보다 불안감이 묻어나오는 문장들로 가득 찰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 무모한 결정에 한 번도 후회감이 들지는 않는다.
백수가 되면 태풍에 집에만 가만히 붙어있어도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