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제품도 필요한 건 그냥 사서 좀 쓰세요...
퇴사가 약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을 빼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날도 20일이 채 남지 않았다. 퇴사하기 네 달전부터 어찌저찌 퇴사하겠다고 밝혀진터라 인수인계도 빠르게 되고 있다. 내부고발을 할까 고민했던 분이 다행히 이 점에선 매우 쿨하게 인수인계를 지시해주어 덕분에 편하게 회사를 다니고있다.
이것만 떼고 보면 좋은 사람이니까 그간의 모든 깊은 빡침을 용서하기로 했다. 하지만 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아직도 짜치는 일을 시킬 때마다 또 불끈불끈 화가 솟아오른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일 안하고 카탈로그를 보더니 정말 소비자가도 싸 보이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을) 물건을 샘플 비용으로 뽑아달라고 지시했다. 아직도 정신 못차렸구나 이 사람은. 저 놈의 물욕.
지인이 필요해서 뽑아달라는데 그냥 몇 천원이면 살 것 같은데...
'이것까지 굳이 회사 돈으로 써야하나?'
'여기가 지마켓이냐? 내가 클릭 한번하면 나오는 자판기냐고.'
샘플로 뽑으려고 해도 뭐든 구구절절 소설을 만들어야하고, 제품 번호도 알아내야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심지어 예전 보스도 이게(회사 돈으로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뽑는게) 너무 심해서 새로 왔을 때 고쳐야할 악습으로 몇 번이나 말했었던 건데, 역시 윗 놈들은 다 똑같다. 지난주에도 마지막 선물 개념으로 스탠드를 뽑아 줬더니만, 저 놈의 물욕은 당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구나.
퇴사가 정말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깊이 화가 나고 너무나도 밉다. 이건 애교일 뿐이고 그 외에도 내부고발을 할 건덕지가 차고 넘치지만 마지막 유종의 미를 아름답게 거두고 가려했다. '내부고발 확 해버려?' 싶다가도 그로 인해 나에게 돌아올 이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참기로 한다.
배트맨처럼 정의감에 앞서자니 이만저만 소시민적인 생각들이 가로막는다.
'사람 일 어떻게 될 지 모르고...'
'배트맨은 돈이라도 많잖아... 정의감을 불태우기엔 나는 빈털털이 백수인걸..'
이렇게 나도 남들과 다르지않는 소시민이라는 걸 느끼는 미생의 하루다.
그래도 나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되지만 남은 사람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오늘도 퇴사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