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제대로 보여줘야겠다
패스트트랙으로 하루 내내 진행했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방문했다. 의사는 MRI와 CT로 판독한 암의 크기가 기존에 초음파로 판독했던 것보다 크다고 했다. 그리고 전이 소견은 없어 암 병기는 1기 정도로 보이나, 너무 젊은 나이에 발병한지라 재발/전이 예방차원에서 수술 후 4회의 항암치료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생각보다 큰 암의 크기에 더해 항암치료까지 권고받으니 정신이 아득하다 못해 혼미해졌다. 암의 재발 위험도를 판단해 항암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비싼 검사(약 200만 원에 달하는 온코프리 검사)를 고민하고 있던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 고민은 그나마 위험도가 낮은, 선택권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받는 수술을 앞두고 나는 얇은 나뭇가지처럼 급격하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이제라도 건강을 챙겨보겠다며 그렇게 좋아하던 당과 탄수화물을 절제하고 있었다. 육류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입맛도 없어서 평소의 절반 정도의 음식을 살기 위해 간신히 삼켜낼 뿐이었다. 그러기를 몇 주,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일정하게 유지했던 몸무게는 어느덧 7 kg 가량 빠져 앞자리가 바뀌었고, 입던 모든 바지가 맞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앙상하게 툭 불거진 골반뼈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마르고 마르다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사라지면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근교의 산에 들렀다. 수술을 며칠 앞둔 11월 초의 가을날이었다. 드높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유명한 산 인근의 야외 카페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 붉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금빛 햇살이 붉은 나뭇잎 위에 내려앉고, 나뭇잎을 닮은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려 어룽거리는 모습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매 계절 반복되면서도 매번 새로운, 그토록 소소하면서도 웅장한 그 광경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라지기엔 아깝다'라고.
수술 전날 2인실에 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큰 수술을 앞두고 조금이나마 편안하고 싶은 마음에 신청했던 입원실이었다. 다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암환자가 옆 자리에 입원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날 나는 춥다고, 옆 사람은 덥다고 11월 가을 날씨에 에어컨을 끄고 켜며 의도치 않은 기싸움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두꺼운 이불을 가져오거나, 애초에 6인실을 신청했을 것이었다. 그래도 이틀만 참으면 퇴원이었다. 암 수술도 2박 3일만 입원시키는 상급종합병원의 시스템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수술 당일 오전 9시, 휠체어에 앉아 수술실로 이동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내가 휠체어에 앉아 의료인과 엄마와 함께 수술실로 이동하는 모습이 왠지 멋쩍게 느껴졌다. 수술실 너머에는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수술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으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온갖 의료기기들로 가득 찬 수술실은 눈부시게 밝은 주광색 조명 아래 하얗게 빛이 났다. 나는 그중 가장 밝은 조명을 받고 있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은 내 몸 위에 두꺼운 천을 덮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해 주었다. 그게 내 수술 전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회복실에 있었다. 수술 부위에 강렬하게 느껴지는 통증을 뒤로하고 양 겨드랑이를 살펴보았다. 가슴을 압박한 붕대 외에는 배액관 등 아무것도 매달린 게 없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수술결과가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진 온 의사 선생님은 예정대로 부분절제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게다가 "내가 수술했지만 정말 잘했다. 젊은 만큼 엄청 신경 썼다!"던 말 그대로, 수술부위는 정말 티가 덜 나는 모양으로 예쁘게 절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믿고 싶었지만, 솔직히 완벽히 괜찮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의 수술 부위는 마치 스푼으로 퍼낸 듯 깊이 파여있었다. 붕대에 압박당했다고는 하지만, 이게 언젠가 차오르기는 할지 걱정스러웠다. 심지어 감시림프절을 떼어낸 겨드랑이에는 물혹이 차올랐고, 수술한 팔이 굳지 않도록 스트레칭을 몇 주간 매일 세 번 이상 해주어야 했다. 하루라도 빼먹는 날에는 어김없이 겨드랑이 근막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견뎌야 했다. 제일 두려웠던 것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이 한쪽 팔을 어쩌면 평생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얼마 후 수술 후 결과가 기록된 의무기록사본을 떼어보고 나서 공포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수술 후 암의 크기가 초음파 검사결과보다 세 배, MRI 검사결과보다 두 배 이상 컸다. 심지어 두 개의 암이 붙어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수술 후 떼어낸 암의 크기가 작은 사람이 더 많던데, 왜 하필 내 암은 크기도 크고, 두 개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감시림프절 하나에 전이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에 온몸의 힘이 빠져 며칠을 누워있었다.
이로서 암 병기는 최종적으로 2기가 되었다. 항암치료 횟수는 최초 예상했던 4회가 아닌 최대치인 8회로 늘어났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절대자가 있다면,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시험이라도 해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좌절이 반복되자 도리어 오기가 치밀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 머리를 반삭으로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