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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Jan 14. 2022

술의 갑옷

rev 2

 마시는 것은

이런저런 생각의 구름들을 뒤흔들어 보는 짓이다


소환되는 기억들은

뒤섞인 주파수로 안구를 뒤흔든다


꿈틀 되는 그리움들

들숨과 날숨의 간격들을 뒤흔든다


혀로 찾을 수 없는 위로의 맛들이

거칠고 쓴 갑옷 속에 숨어 있다


갑옷 벗겨지면

千相萬念의 흔들림들 주저앉는다


노트르담의 미사보다 聖스러운 의식이다


무한의 허파에 단숨에 밀어 넣은 들숨의 압력 

神도 모르는 작은 구멍으로

날숨을 천천히 밀어낸다


식도의 수분이 증발하고

그리움이 갈증을 완성할 때까지

聖스러운 의식은 실존의 계율처럼 반복한다


기사식당 구석자리

일용직 노동자찌그러진 탁주

땀냄새에 절은 낡고 찢겨진 갑옷을 벗긴다


겨울밤 포장마차

싼 웃음에 둘러싸인 소주 

 파타고니아의 갑옷을 벗긴다


알제리 밤거리

따베른의 꼬냑

뫼르소의 실존을 덮 핑계의 갑옷을 벗긴다


실연한 젊은이맥주 거품은

눈물에 탈색된 흰 솜의 갑옷 벗긴다


그리고

그리움조차 뱉을 수 없는 사람들의

발효된 한숨은

철갑의 무쇠 갑옷들을 힘겹게 긴다


주머니 속 깊은 곳에 안주가 있다

벗어 내린 용감한 포기에 대한 일회용 위로다


흔들리던 메스꺼움들을 버티게 해 준다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것은

깊숙한 곳의 휴식에 취하는 것이다


깊숙한 곳의 흔들림에 춤을 추는 것이다


이렇게 힘겹게

어렴풋한 그대에게 다시 취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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