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켜야 할 선

by 벨찬

선이가 킥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킥보드를 탄 선이는 제법 빠르다. 나도 조금은 뛰어야만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 다만 힘찬 발 구름과 달리 핸들 조작은 미숙해서 곧잘 풀숲이나 기둥에 부딪치곤 한다.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하는 선이는 킥보드 운전도 자신이 직접 하고 싶어 한다. 내가 살짝이라도 핸들을 잡으려고 하면 선이는 내 손을 밀어내며 운전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내리막길이나 찻길에서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때는 위험하기 때문에 다소 저항이 있을지라도 강제로 핸들을 잡아끌고 간다. 그러면 선이는 “선이가 할 거야, 아빠 하지 마”하며 격렬하게 떼쓰고 고집을 부린다.


이렇게 선이가 자기 뜻을 분명히 말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겐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선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려 하거나 혹은 해야 할 일을 거부할 때, 나는 어디까지 강제하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강제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고, 원하는 대로 하게 두어도 되는 일도 있을 텐데, 그 사이의 경계를 알고 그때그때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지혜가 아직 내게는 없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분명한 선을 정하고 짧고 단호한 태도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육아를 할수록 나는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걸 더 알아가고 있다.


며칠 전 목욕을 시킬 때도 같은 고민에 빠졌다. 요즘 선이는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날은 머리를 감지 않은 지 오래되기도 했고 선이도 머리를 벅벅 긁길래 억지로라도 머리를 감기고자 했다. 역시나 선이는 머리에 물이 닿자마자 “무서워, 하지 마, 나갈 거야” 하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처음에 나는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목소리를 깔고 “안 돼, 오늘은 씻어야 해, 힘들어도 참아”라고 말하며 힘으로 선이를 씻기려고 했다. 내가 지금 물러선다면, 선이가 울고 떼쓰는 걸로 다른 많은 일을 해결하려는 아이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손을 가운데로 모은 채 알몸으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가엽게 느껴졌고, 거울에 비친 나조차도 낯설게 보이는 차가운 나의 표정에 머리 감기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혹여나 이런 일로 선이 마음에 어떤 구김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유아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상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아마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였을 텐데, 어느 날 엄마가 입혀준 옷이 싫어 투정을 부렸지만 결국 그 옷을 입고 집을 나섰던 일. 그러고는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고 앞을 배회하던 기억이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져 즐겁게 유치원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엄마에겐 내가 거부하던 옷이지만 입혀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전후 사정은 잘린 채 부정 받은 인상만이 남아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빤듯하게 펴져라 아무리 노력해 봐도 한번 구겨진 종이에는 자국이 남아있는 것처럼, 기억의 자국이 새겨진 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아무튼, 고민을 깊게 한들 명확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고민이기도 한 듯하다.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며, 좋은 것만 주는 게 아이에게 늘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내가 지켜야 할 선을, 깊이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방향성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정해지는 게 느껴진다. 웬만하면 선이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는 편을 선택하자고. 그러지 못하는 날에는 적어도 내가 선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만은 알게 하자고.




KakaoTalk_20250730_131915811_02.jpg
KakaoTalk_20250730_131915811.jpg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