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분들을 위해 약소하지만 선물로 표지 속 인물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에 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미어샤이머는 오늘날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학자 중 한 명입니다. 오늘날 뉴스에서도 그의 주장을 덧입혀 왕왕 보도하기도 하고요.
한편, 다수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에 관한 단편적인 글들을 인용해 설명할 뿐, 정작 그의 주장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는 미진한 부분이 보여 이 글을 적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조악하지만 제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더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희구합니다.
뜻깊은 연말과 힘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하며.
I. 들어가며
오늘날 현실주의 계보 속 학자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있는 학자를 한 명 꼽으라 한다면, 단연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이하 미어샤이머)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학자 중 한명일 것이다. 그는 역사적 통찰(insight)을 상당 부분 상실한 채, 미시경제학으로 국제관계 속 자신이 엮을 수 있다고 가정한 부분들만 연역적이면서 효율적이게(parsimony) “이론화”한 케네스 왈츠(Kenneth N. Waltz 이하 왈츠)보다, 더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2020년 미국에 거주한 학자 기준).
이는 분명 그에게 고무적일 것이다. 왈츠가 이론화한 부분들은 미시경제학의 추상적 모델을 차용해 현실과의 적실성을 높이고자 했고,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시도한 나머지, 앙상한 뼈대만 있는 구조물처럼 설명하기 나름의 상태로 남겨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어샤이머에게 이론이란, 불투명한 미래를 선형적이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은 틀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미래는 다르다며 정의를 미래로 끌고 간다. 대다수는 미어샤이머를 이론가(theorist)라고 받아들인다. 혹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왈츠는 냉전과 함께 사라졌기에, 미어샤이머가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사제관계가 아니지만, 가히 청출어람을 넘은 최고의 찬사다. 그들은 근거로 2001년에 출판돼 2014년에 개정을 거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을 제시한다. 이는 ‘이론서’와 같다고 평한다. 하물며 미어샤이머의 주장과 출판물들은 곧이곧대로 ‘이론’의 연장선이라 간주한다. 구조에 공격성을 입힌 그의 주장은 마치, 국가들의 도발적인 행동의 모든 걸 설명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든다.
이후 살펴보겠지만, 근래의 미어샤이머는 과거의 미어샤이머들과는 상반되는 견해를 피력할 때가 많다.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하기보다는, 강연 활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재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이 세운 이론과 상충하는 발언으로 “설명하기 위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중심마저 차츰 벗어난다. 심지어 언제나 타인에게 겸손함을 요구해 왔지만, 스스로에게는 겸손의 기준을 관대하게 정의 내려 실책을 안정하지 않기도 한다.
Mearshiemer on Yale Lecture
본 연구는 이론가라 원용한 미어샤이머의 이론은 ‘이론이기를 희구하는 주장들’에 가까우며, 미어샤이머의 저작을 위주로 살펴보며 발생한 그의 불일치성을 통시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그의 공격적 현실주의 기반 전반이 2000년대의 실천 논증을 거치며 어떻게 확장되었고,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어떤 모순에 직면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2010년대 후반부터 출판 활동보다 강연활동에 편중됨에 따라, 그의 세부적인 논지들에 관한 섣부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져, 2010년대까지의 저작과 강연에 한정해 분석을 진행한다. 덧붙여 공격적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무수한 학자들이 있음에도, 미어샤이머의 논지를 분석하는 이유는 그가 오늘날 공격적 현실주의의 포문을 연 학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