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샤이머 저작의 비판적 검토와 그의 모순성 제시III

1979년부터 2019년까지

by Belleatriz

III. 미어샤이머의 Culmination 그리고 Reinforcement

실천적 참여의 포문을 연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데자보, 2열의 정중앙에서 미어샤이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1) Culmination의 2000년대

구조적 현실주의자인 미어샤이머가 실천적 참여를 전개함에 따라, 현실 정치 참여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던 구조주의자(system theorists)로서의 논지를 지키지 못한다는 비판이 가해졌다. 하지만 상기 비판은 미어샤이머에 의해 구조 자체를 인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구조의 안티-테제(anti-thesis)인 국내정치를 톺아보기 시작했다고 재반박될 수 있을 것이다.

좌: 왈트 , 우: 미어샤이머

무엇보다 그가 추상적으로 제시한 역외균형자로서 세력균형의 정도(程度)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라도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했고, 그의 공격적인 주장과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와의 연관성에 대한 지속적인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이 구조를 극적으로 혼탁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 정책제언적 연구를 진행했던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국제구조 속 국내구조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인지하지 않는 전제에서, 국가 내부의 문제점과 해소점을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스티븐 왈트(Stephen M. Walt 이하 왈트)와 당구공 수술을 집도해 나간다.

그들은 다수가 오인하는 것과 달리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 비합리적 광인(狂人)이 아니며, 이라크 침공을 통한 불필요한 전쟁을 지양하고 봉쇄정책으로도 유효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귀납적인 사례를 제시해 이를 뒷받침했다. 추가로 내부인사의 증언을 통해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미국 행정부 내부에 만연했으며, 이들은 공상(空想)에 잠겨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갈파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한 이라크에게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이나 핵 운용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종국적으로 미국의 중동지역 대외정책이 국익에 정초(定礎)해야 함에도 과도한 개입을 단행한 계기는, 국내정치 속 친(親) 이스라엘 로비집단이 실질적으로 대(對) 중동정책을 설계해 왜곡시키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미어샤이머와 왈트가 합심해 만든 저서 <이스라엘 로비>

신보수주의자들과 엮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취한 그의 행동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라크 침공을 촉발한 신보수주의를 외교적 편승을 강조하는 권력중심적 성향과 이상주의적 성향을 동시에 띄고 있음을 분석하여 공격적 현실주의에 가해진 비판이던 신보수주의와의 밀월관계에 대한 해명을 신보수주의와 이상주의를 병기해 제시한다. 그리고 신보수주의자들과 친(親) 이스라엘 성향 지지자와의 유착관계로 취한 포괄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인해 중동 대외정책이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한계점을 폭로함으로써 결별을 이뤘다. “강대국의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드러나던 역외균형에 관한 한계와 달리, 두 국가 해결책(two-state solution)에 동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라는 제언까지 부연한다. 하지만, 미어샤이머 또한 이러한 제언이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이후에 인정한다.

네오콘의 대표 3인방: 도널드 럼스펠트, 조지 W. 부시, 딕 체니

모호했던 역외균형에도 설명력을 더하기 위해, 중동개입을 십자군적 응분에 찬 신보수주의자들과 민주주의 전파를 원하는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liberal imperialist)들의 뒤틀린 이상에 입각한 전쟁(현실주의적 권력투사)이라 비판한다.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는 튜튼기사단

한편, 그의 제언은 명시적으로 드러난 타인의 이상에 비판을 가할 뿐,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본인의 이상에 입각한 행동을 취하기를 설명하는 것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제도와 관념상의 이상주의자를 군사력 투사의 신보수주의와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미어샤이머의 면피성 발언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는 언제나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National Security Strategy)를 언급할 때 ‘선제적(preemptive)’ 조치에 한정해 질타만 가했으며, 부시 행정부는 본디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음을 비호한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Reinforcement의 2000년대

국내정치에 비판을 가하기 위한 왈트와의 동행이 곧 기(旣) 이론화된 그의 주장의 정당성을 제고(提高)시키는 작업에 제동이 걸렸음을 반증하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신보수주의자와의 의혹 속에서도 그의 주장에 대한 확신의 수사와 강도는 이전보다 더 화려해진다. 미어샤이머가 선호하는 표현인 결론으로 먼저 내려가자면 (To the bottom line),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 무오류의 함정(Scotsman Fallacy)에 걸려 자기 이론의 적통을 입증하고자 시도한다. 그는 본인만이 진정한 의미의 E.H. 카(Edward Hallet Carr 이하 카)와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 이하 모겐소)를 잇는 고전적 현실주의 후계자라는 우(愚)를 범한다.

가령, 미어샤이머는 카의 추모강연에서 영국학계에는 더 이상 현실주의 계보가 존재하지 않으며, 영국학파(English School)는 이상주의자들에 가깝고, 카의 권력지향적 현실주의 성향을 오롯이 담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당시 그의 발언이 담긴 강연록을 보면, 실상은 이미 카가 20년의 위기(20 Years of Crisis)에서 짚어낸 극단적 이상주의자들을 미어샤이머가 다시 꺼내 허수아비를 세워 영국학계를 공격하고 있을 뿐이었다.

<The Wizard of Oz>

이후 해당 강연의 부연설명에서도, 학자들을 영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의 수고로움은 인정하지만 본인이 변덕스러운 기준(capricious labelling)을 지니고 있다는 질타에 불구, 오직 물질적인 요소를 계측하고 다루는 것만이 현실주의라고 강조하며 영국학계에서 그 기준에 부합하는 현실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려할 의사가 없다는 외골수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행한다.

<The Wizard of Oz> 中

미어샤이머의 논리적 오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상기 논쟁 직후에 기고한 기사에서 (자신이 그려낸) 모겐소라는 권위자의 입을 빌려 권위와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마저 저지른다. 월남전(Vietnam War)과 이라크전의 개입 동기는 다름에도, 참전을 통한 개입이라는 유사점이 보여 모겐소를 강령해 모겐소라면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절대로 전쟁하면 안 된다고 경고할 것이 분명하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모겐소가 강조했던 권력으로 정의된 국가이익에 대한 논의나, 도덕성에 대한 논의는 부재한 채, 하염없이 모겐소의 입을 빌려 미어샤이머 본인이 위협의 수단으로 오랫동안 즐겨 사용해 온 과잉민족주의(hyper-nationalism)를 논의를 결론으로 끌고 내려간다. 미어샤이머는 소제목으로 그(모겐소)라면 중동전쟁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이냐고 자문(自問) 한 후, “태생부터 현실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시대에 미국이 중동지역에 미국에 호의적인 국가들로 채우기 위해 정치체제를 바꿀 목적으로 점령하고 침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자답(自答)한다.

그뿐만 아니라, 왈츠를 비판하는 강도도 더 높아진다. 그는 왈츠의 이론은 당위의 가치만을 원용하는 미숙함(naivety)을 보인다고도 조소한다. 왈츠가 국가들이 세력균형 논리에서 벗어난 비전략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 체제가 알아서 처벌할 것이라는 가정에 거센 비판을 가하며, 합리적 행동이 곧 영특한 행동과도 같다고 설파한다.

나아가 방어적 현실주의자들이 국제체제의 발동 기제를 지나치게 낙관한다고 말하며, 전쟁을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비판을 넘어, 귀납적으로 방어 동맹(balancing coalition)이 잘 기능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경고와 함께, 오작동은 ‘순환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다고 답변한다. 오직 불확실성 속에서 국가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은 예외적인 강력함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주장들은 지역별 위기(crisis)들에 관한 끊임없는 경고의 기제로서 작용한다.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당시 유소작위(有所作爲)와 화평굴기(和平屈起)를 외치는 중국 공산당이 절대로 평화롭게 부상할 수 없음을 미국 내부(9.11 테러와 07~08년 금융위기)에 위기가 터질 때마다 끊임없이 인지시킨다. 그리고 위기를 묘사하는 수사의 강도는 2000년대 초를 지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어느새 중국과 관련된 논문과 인터뷰에서만 언급되는 추상적인 수사들은 구체화된다.

유소작위의 장쯔민(좌), 화평굴기의 후진타오(우)

미어샤이머는 중국에 대한 자신의 위협이 통하지 않을 때(혹은 위협을 고조시키고자 할 때)마다, 근미래의 위협은 중국이라 묘사하면서 과연 그들이 원칙적인지(principled), 윤리적인지(ethical), 민족주의적인지(nationalistic), 생존지향적(survival) 인지의 여부를 순차적으로 제시해 타인에게 링반데룽(Ringwanderung)을 강제한다.

링반데룽(Ringwanderung)

동시에 중국 인근에 실제 위기(남중국해 인공섬 축조, 북한 핵 3차 실험)가 발생할 때마다, 주변국들에 주권의 절대성을 원용하며 핵을 권장하기도 한다. 중국에 들이밀어지는 4가지 추상적 기준들은 이후 그의 ‘이론서’인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개정판에 실리게 된다.

미어샤이머는 좋은 이론은 반증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반증가능성(falsifiable)을 가진 이론이 과학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언급한 칼 포퍼(Karl Popper)의 말처럼,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 찰나를 기다리길 바라는 이론은 진정한 사회‘과학’ ‘이론’이라 할 수 있을까? 설령 그의 정당화가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음을 전제한다면, 역설적이게도 현실주의 계보에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존재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타인에게 순환 논리에 갇히도록 반강제 하는 명징하지 않은 4가지 기준들이 과연 공리(axiom)라 인정되기는 힘들 것이다.

Karl Popper

미어샤이머는 핵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이전의 주장에, 가장 정치적인 수단으로써의 전쟁과 위협을 중국에 끊임없이 부과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으며, 그가 말해온 역외균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 행정부에 대한 비판으로만 채워져 설명력이 부족한 지적을 여전히 피할 수 없다.

영국학파의 거장, Hedley Bull

미어샤이머는 헤들리 불(Hedley Bull 이하 불)이 제시한 국가중심적 연구자의 특징 중 하나인, 실제 역사적 증거와 맥락이 아닌, ‘합리적 행동’(rational action)이라는 이름 하에 정당화된 행동을 외삽시킬 여지를 만들어, 국가의 외교정책을 예측하고 이해하는 위험을 범했다. 스스로도 답하지 않은 적실성과 정책 처방 기준의 혼탁함은 곧,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가깝게 변질됐다.

https://youtu.be/yXSkY4QKDlA

미어샤이머 스스로도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와의 인터뷰에서 이 지적을 인정한다. 그는 “별다른 선택이 없다(We have no choice)”라는 말과 함께, 본인에게는 합리화의 여지를, 타인에게는 여지없이 더 극적으로 위협을 받아들이는 악수를 강제한다. 본격적으로 순기능으로 작용하던 현실과 이론 사이의 간극을 줄여주던 실천적 참여에 기능고장 나기 시작한다. 이론이라 자부되던 그의 주장과 역외균형의 구상은 크림반도 사태와 함께 시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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