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 다문득

Libera from Hell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Response Paper

by Belleatriz
천원돌파 그레나간 OST - Libera me from Hell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 필립 폰 폴츠

고대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친척으로 태어나 그에게 후원받고, 수려한 외모로 성년 이전에는 남성들의, 성년 이후에는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알키비아데스는 유능했을 뿐만 아니라, 남다른 자부심으로 무장한 채 큰 뜻을 품고 자잘한 일에는 개의치 않아하며 고결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에 그는 도도하거나 거만해 보일 수도 있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칠 때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당시 척박하고 돌산이라 말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의 아테네에서 우수한 혈통마를 길렀으며, 마주로써 후원이 개인선전용이라 거만하다는 주위의 비판에 올림픽 전차경기에 직접 출전해 우승(과 마주(馬主)로 선수에게 후원해 2등, 4등) 하기도 한다.

좌: 유년기의 알키비아데스, 우: 알키비아데스의 죽음

이처럼 당대 아테네 인들에게 정치적 명문가에서 태어나 아테네의 최고의 인재가 될 것이라 여겨지던 알키비아데스는, 역설적이게도 델로스동맹과 펠로폰네소스동맹 간의 격돌에서 고국 아테네를 패배하는 데 일조한다.

아테네로 다시 돌아온 알키비아데스

성상파괴(헤르메스 석상)라는 정치적 모략을 피해 아테네를 등지고 스파르타에 망명하고, 스파르타 왕비를 유혹해 아기스(스파르타 왕)의 총애를 잃어 페르시아로 재망명을 한 후, 아테네 시민들의 요구로 아테네에 다시 돌아온 그는 30인 과두정의 의결과정으로 추방당해 아나톨리아 반도 인근의 개인소유지에서 사망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격동의 국제관계 소용돌이 속 알키비아데스의 행동들에 대해 분석하기 이전에, 그의 초기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나, 어떤 자세를 지녔으면 더 좋았을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이는 그와 소크라테스와의 관계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글도 남기지 않았다. 알키비아데스의 경우, 전래되는 글이 없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진본으로 추정되는(혹은 플라톤의 <국가>을 이해하기 위한 일급 요약서인) 대화편 <알키비아데스>에서 유추해야만 한다.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소년애(愛) 대상이 되는 기간을 갓 벗어나 구애를 받지 않게 된 알키비아데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나이들어가는 육체의 변화 속에서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음두지 말고, 그(알키비아데스)의 영혼을 사랑해 곁에 남는 사람을 위해 영혼이 최대한 아름다울 수 있도록 분발하기를 촉구한다 [1] [2]. 그는 성적인 교제가 아닌, 지성적 교제를 촉구한다.

나아가 육안(肉眼)의 반경에 보이는 무리들 중의 으뜸이 되는 것이 아닌, 인식의 지평선 속의(국제관계 속의)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걸출한 인물이 되기를 원용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눈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마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볼 수 있듯 상대편의 눈동자 안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처럼, 자기의 영혼과 지혜를 스스로 돌아봄으로써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3].

다시말해,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가 상대방을 이기고자 경쟁적으로 논박하는 소피스트의 심리적 동인이 아닌,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각함으로써 스스로 탐구를 추구하고 궁극적으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숙고를 잘하는 것은 지혜를 갖추었다는 뜻이고, 숙고를 잘하게 되면, 자연히 신중함과 절제(혹은 자제)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것을 알더라도 가장 좋은 것을 알지 않는 한, 부분적인 좋은 것에 대한 앎은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분별있는 사람이란 가장 좋은 것을 알고 그것을 가장 '이롭게' 행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지위고하 막론하고 분별있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혹은 함께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동료를 등진 채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처럼 산파술을 구사하는) 문필가와 (알키비아데스처럼 고결하고 유능한) 정치인 사이의 균형있는 관계를 통해 국가와 국제관계를 톺아보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가 <국가> 속에서 상정하던 이상국가의 원만한 운영과 융성을 위해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고, 다수가 아테네의 영광이길 기도하던 알키비아데스가 운명의 장난처럼 그 반대로 되돌아온 사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단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Fine



[1]

덧붙여, 소크라테스는 소년일 적의 알키비아데스에게 다가가 구애하던 많은 이들과 달리 그가 거리를 계속 두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라 언급한다.


[2]

자네가 말하기를 나는 자네보다 조금 앞질러 자네에게 다가갔을 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안 그랬더라면, 무슨 이유로 나만이 떠나지 않는지를 알고 싶어 자네가 먼저 나에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했지. … 그러니까 이게 그 이유일세. 나만이 자네를 사랑하는 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자네의 것들을 사랑하는 자였다란 걸세. 자네의 것들은 좋은 시절이 가고 있지만 자네는 꽃피기 시작하네. 지금도 나는, 자네가 아테네 민중에 의해 망쳐지고 더 흉하게 되지만 않는다면, 자네를 팽개치지 않을 것이네. …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걸세. 자네가 민중의 애인이 되어서 망가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지. 아테네 사람들 중 많은 훌륭한 사람이 그와 같은 일을 당했으니 하는 말일세. "기상이 늠름한 에렉테우스의 민중"은 얼굴이 잘생겼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벗은 모습을 보아야 하네. 그러니 내가 이르는 신중함을 신중히 생각해 주게. (<알키비아데스I&II> 김주일, 정준영 역. p. 107-8)


[3]

눈은 눈을 보면서, 특히 눈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자 눈이 보는 수단으로 삼는 바로 이것(눈동자)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을 볼 것일세. … 눈이 자신을 보려고 한다면, 눈을 들여다봐야 하고, 눈의 훌륭함이 나타나는 그 영역을 들여다봐야 하네. … 친애하는 알키비아데스, 그러니 영혼도 자신을 알려면, 영혼을 들여다봐야 하고, 무엇보다도 영혼의 훌륭함, 즉 지혜가 나타나는 영혼의 이 영역을 들여다봐야 하며, 또 이와 닮은 다른 것을 들여다봐야 하네. … 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반사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인간적인 것들 중에서 영혼의 훌륭함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장 잘 보고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네. … 그러니 더없이 훌륭한 알키비아데스, 자네들이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자신한테도 나라한테도 폭군의 권력이 아니라 훌륭함을 마련해 주어야 하네 (<알키비아데스I&II> 김주일, 정준영 역. p. 110-11)


<읽은 문헌>

- 플라톤, <알키비아데스I&II> (김주일, 정준영 역. 아카넷)

- 박성우, “국익의 철학적 토대와 철학적 국익추구의 가능성: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를 중

심으로” <국제정치논총> 54집3호 (2014)

- 서영식, “서양고대철학의 전쟁이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철학논총> 제

82집 4권 (2015).

- 서영식 “플라톤의 전쟁론” <동서철학연구> 제77호 (2015).

- Zelcer, Mark, "Plato on International Relations" The Philosophical Forum 48:3 (2017), 325-3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