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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지 않은 사람들

by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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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은 사람들이다. 내가 원하고 갖고자 하는 정보는 곧 내가 내 선택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말을 부드럽고 교양 있게 한다 하여도 나에게 주체가 되도록 하지 못하게 '필요한 말만 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친절하지 않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내게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사람이라고 규정지어 버린다.


순수한 지적호기심과 오지랖은 쉽게 구분된다. 그러나 그걸 구별해내지 못하고 정보를 굳이 줄 필요가 없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아웃팅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아웃팅은 성적인 의미라기보다 자신의 주체성과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개인의 바운더리를 침해받은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일을 마주한 사람은 고통받는다. 다만 그 고통의 유통기한을 알고 있다면, 그 고통을 주는 자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될 날짜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면, 정말 내게 중요한 것이 그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면 인내할 수 있다. 참아낼 수 있다. 다른 행복과 성취감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수많은 죽음과 고통을 참아내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며 살아낸 사람도 나중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과거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더욱 강하게 느꼈던 생존에의 갈망과 욕망이 이제는 덧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지적호기심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이 자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어떤 추동을 갖게 한 것일까. 그는 어떤 고통에 반대한 것일까.


나는 내가 결정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각각을 모두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게 누구든 정보를 주어야 한다. 특히나 내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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