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디 안녕하세요-

2024년을 마치며

by 지종근

미안해 내가 너에게 그랬다면

곤란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우습네 나를 믿어버린 네가

멍청해 아무 증거도 계약도 없이

...


요즘 부쩍 손이 가는 슬픈 노래 가사를 헤아리다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넣었다.

길든 짧든 글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날에는 꼭 무얼 해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라고 믿었는데

1년의 마지막 날이라고 유난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안 좋게 돌아가신 거니까 그냥..."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저 멀리 2층짜리 빌라가 있다.

소방차와 경찰차, 그리고 뒤를 잇는 응급차가 모여있는 그 집 앞을 마침 지나고 있었다.

소방관이 쇠지레로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자 그 모습을 등지고 집으로 몇 걸음 더 걸었다.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무리는 나와 반대로 나아갔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들며 그 현장을 찍기도 했다.

'외롭게 가셨다'며 '그냥 지나가달라'며 애원하는 목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역사가 초라하게 저물고 있었다.




드디어 영화 <시네마 천국>을 봤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던 영화이니 꽤 느지막 본 셈이다.

개인의 의지든 아니든, 정말 필요할 때마저 그리운 이에게 가 닿지 못하는 것은 퍽 잔인한 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전화도 편지도 하지 말라고 알프레도는 말한다.

그래,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단호함이 가끔은 필요하다.

잔정 없고 뒤끝 없는 인연은 꽤 가벼이 소비되고,

잠겨 죽어도 좋을 따뜻함도 어떤 시점에서는 풀 수 없는 족쇄가 되어버리곤 한다.

허나 슬픔 뒤에 따르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더디지만 나아갈 수 있다.

상실의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그런 따뜻함을 갈구하는 것이 미완한 인간이 진 숙명일 테다.




돌아보면 잔인한 한 해였다. 어떤 밤, 또 어떤 아침.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우리의 시간은 그리 안녕하지 못했다.

내일은 신정이지만 사실 12월 31일, 오늘은 아무런 날도 아니다.

더 이상 어떤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의 눈물로 기억되지 않기를,

식어가다 못해 오히려 차가워지는 시선에 고통받지 않기를,

아무런 날도 아닌 모두의 하루가 그저 안녕하기를.

올해 마지막 밤의 끄트머리에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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