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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종근 Aug 31. 2022

성장속도: 20미터 퍼 데이

건조한 일상에 유난히도 역동적인 시간, 밤이다. 별다른 약속이 없다면 매일 밤 10시나 11시에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마트로 향한다. 퇴근하는 엄마를 마중 나간 게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정말 가까운 친구들은 때때로 이른 귀가를 원하는 나의 속사정을 알고 있을 정도다. 어쨌든 마중을 다녀온 뒤에야 ‘청개구리 공원’으로 요란한 발걸음을 옮긴다.

 

작년 여름까지는 하루에 5km를 뛰었다. km당 5분 37초, 빠르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유지하자는 목표였다.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에 걸렸다 돌아와 다시 뛰려니 금방 숨이 찼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 후유증으로 폐 조직이 손상된 건지, 아니면 한 달 가까이 쉬어 적응되지 않은 건지 1km만 뛰어도 뻗기에 십상이었다. 결국 올해 봄까지도 제대로 뛰지 못하고 빠르게 걷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운동이 가장 되지 않았던 기간에 생전 느낀 적 없던 희미한 우울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기력감이 들어, 될 일도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기분이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느려도 좋으니 하루에 2km만 뛰자는 목표를 세웠다. 더 나아가 이튿날에는 전날보다 20m만 더 달려보자고 마음먹었다. 당연히 죽을 맛이었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었던 것 같은데, 뛰다가 숨이 차면 스스로 꼬집거나 가슴을 쳤다. 정말 가끔은 공원 길에 나 있는 풀떼기를 때리면서 달리기도 했다. 얼마나 뛰었다고 입속에서 피 맛이 나는 건지 우습기도 했지만, 이 악물고 매일 목표한 만큼 달렸다.

 

무리를 하면 꼭 탈이 난다. 달리다 보면 꼭 누군가와 나란히 나아갈 때가 왕왕 있는데, 그에 맞추거나 앞서가려고 하면 꼭 목표를 채우지 못한다. 속으로 괜히 지는 느낌이 들더라도 결코 무리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들 의식하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달려야 한다. 문득 뜀박질이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준비운동도 그렇다. 수년 전에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돼서 가끔 삐끗할 때가 있었고, 그에 따라 왼쪽 햄스트링에도 종종 불편함을 느꼈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서 무리할 일이라곤 전혀 없었던 다리를 충분히 풀어주고 5km를 걷고 나서야 비로소 속도를 냈다. 덕분에 무리해서 달리느라 통증이 있던 작년보다 몸 상태도 훨씬 괜찮았다. 육체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밤 운동을 스스로 재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어느덧 2.84km를 뛴다. 기록은 km당 5분 19초, 익숙해져서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잡념도, 스트레스도 많이 사라졌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힘껏 달린 후에는 어제의 나보다 잘 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성장’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제목을 꾸몄지만, 밤 운동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담백한 제목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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