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에 속지 마라
예전에 특기를 살리기 위해 디자인학원에 다녔었다.
그곳은 일반 학원의 개념이 아닌 기술을 가르쳐 일을 할 수 있게끔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나까지 세 명이 동기였다.
아무리 그림을 좀 그린다는 사람이 온다고 해도 디자인을 처음 접하는 터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은 7살 연상이었다. 주연과 신혜언니는 동갑이라 처음부터 "야 야" 말 트면서 지냈다.
곧 우리 셋은 말 트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 힘들면 의지하고 격려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주연 언니가 몸살도 걸리고 입술도 갈라지면서 병원까지 다니며 한 달을 지내고 나서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집에서 온라인을 보며 작업하기로 했다.
디자인이 상당히 어려웠다. 아이디어를 내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가 참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나도 몸이 지쳐서 몸살로 병원에도 여러 번 다녔었다.
나는 내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즉 흥미 없는 것은 바로 접는 스타일이지만, 어려워도 해볼 만한 것 즉 흥미가 느껴지는 것은 고집스럽게 하는 사람이었기에 도중하차 없이 병가를 내면서까지도 배우면서 일을 즐겼다.
어느덧 두 달이 지나고, 신혜 언니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아니 주연이가 너무 힘들다고 그만둔다하길래 내가 네가 열심히 안 하니까 그렇다며 조언 충고를 해준 것뿐인데 삐졌는지 그 후부터 연락해도 안 받고 카톡 1도 안 없어지고 하더니 이제는 카프도 바뀌고 나를 차단한 것 같아."
얼마 후 주연언니는 그만둔다고 연락이 와 짐도 챙길 겸 나랑 차 한잔 하자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 신혜언니가 급히 나에게 달려와서 말을 했다.
"대표님이 그러는데 지금 주연이 그만둔다 그랬데!!"
주연언니한테 지금 들었다고 하니 "나한테 연락이 안 오는 데 너한테 왔었다고??" 하면서 믿기 힘든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개 진짜 너무한다. 친구가 조언 충고 해줄 수 있는 거지 그걸로 기분 나빠서 차단까지 하냐?" 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분풀이를 했다.
주연 언니랑 근처 카페에 갔다.
"나는 개를 친구로 생각한 적 없어. 안지 세 달 밖에 안 됐는데 무슨 친구야 친구 기는. 그냥 친한 동기였을 뿐이지. 나를 위한 조언 충고 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 못 봤다. 자기가 뭔데 나를 위해서 하는 말 이래? 웃기지도 않아 정말. 자기야말로 잘 살라그래. 꼴값 떨고 있어. 개 어떻게 말했는 줄 알아? "야 네가 그렇게 열심히 안 하니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거야?" 하며 큰소리치는 거야. 자기가 내 삶에 대해 뭘 안다고 혼자 판단하고 막 말하는 거야? 난 상처받은 게 아니라, 개가 아주 이상한 애라서 끊은 거야. 애가 점점 선을 넘더라고. 아주 질이 안 좋은 애야. 처음에는 몰랐어. 꼬인 심리와 열등감으로 꽉 찬 애인지, 뭐든지 좋게 못 보고 아주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해. 점 점 이상한 애가 되어가더라고.
처음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순박하게 생겨서 진지하게 접근하길래 나도 친하게 된 거였는데.
신혜가 돌싱이라 혼자 사는 게 외로우니 그런가 보다 하며 맞장구쳐주며 받아주었는데 애가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하더니 훌쩍훌쩍 넘더라고, 그래서 차단한 거야."
"신혜가 그동안 너에 대해 얼마나 욕했는 줄 아니?
야, 율 정도의 외모면 흑수저도 금수저랑 결혼할 수 있냐?
남편 잘 나가는 거 거짓말 같지 않냐? 아프면서도 열심히 일 배우며 작품 완성하려고 하는 것 보면 남편도 없는 싱글인 것 같아. 남편이 잘 나가는 사람이면 이렇게 힘든 일을 안 하고 말지 왜 하냐? 더구나 율은 본업도 있는 데 말이야.
남편이 힘들면 그만두란 말도 다 거짓말 같아. 남편이 일하지 말라하는데 나 같으면 절대 일 안 해. 병원까지 다니면서 왜 사서 고생하냐? 그리고 율은 우리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남편에 대해 말 절대 안 하잖아. 그것도 의심스러워. 아무래도 다 뻥 같아. 내가 언젠가 확실히 진상을 파악해서 너에게 알려 줄게."
(참고로 나는 남편에 대해 누가 물으면 그냥 기업 임원이라고만 말한다.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남편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 쪽에서도 누구에게도 남편이 전문직이라고만 했지 잘 나간다는 말은 결코 한 적이 없다.)
그 말 듣고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띵" 했다.
신혜 언니가 왜 나를 그렇게 본다는 말인가?
우리는 같은 동기 아니었는가?
힘들면 서로 힘들다고 하고, 때로는 선배들 욕도 할 수 있는 그런 허물없는 사이 아니었는 가?
"어느 날은 아침에 나랑 통화하면서, 오늘 너에 대해 확실히 진상 파악해서 나한테 알려주겠데, 그래서 속으로 왜 그렇게 오버하나 했어 그리고 너는 욕심이 있어서 (본업)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도 사실은 맞장구를 쳤어, 이제 와서 사과할게,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그날 밤에 전화 왔어, 너에 대해 알아낸 정보가 있다고 하면서, 난 남편 저녁 해주느라 몇 번 못 받았는 데, 계속 전화 오길래 받았더니 지금 율은 집에 갔다고 하면서 가기 전 여러 가지를 물었다고 하면서 말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날 밤이 그날 밤이었다. 신혜 언니가 스타벅스 커피를 사가지고 내 자리로 찾아와 남편에 관해 인적 사항을 슬며시 묻기 시작하더니 자리 잡고 앉아 여러 가지 나에 대해 묻기에 대답해 주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신혜언니가 주는 커피를 마시며, 묻는 말에 허심탄회하게 다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정보를 꼬아 듣고 없는 말 붙여서 주연언니한테 나쁘게 말한 것이었다.
"말하려면 밤을 새야 하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만 말하자면, 송선배님이 너를 엄청 예뻐하시잖아, 그걸로도 엄청 질투시기하더라고, 자기한테는 한 번도 인사한 적이 없으면서 율한테는 엄청 잘해준다느니 뭐니 하면서 엄청 싫어하면서 말하더라고."
그날 이후로 난 신혜언니를 차단했다. 물론 둘 다 차단했다.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있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경거망동 할 수 있었던 거다.
누가봐도 그 둘은 엄청 친한 사이였다.
이제와서 사이가 틀어지니 나에게 말할 수 있었던거다.
사람은 아무리 친해도 언제 틀어질지 모르는 건데 둘은 성숙하지 못했다.
신혜언니는 눈치를 챘는지 곧 적성에 안 맞는다며 그만두었다.
난 전문가 과정까지 가서 선배님들과 대회를 여러 번 나가 실력이 늘었다. 그동안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겨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항상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준다.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이 주는 상처는 나의 마음을 크게 실망시키지 않는다.
친한 얼굴 속에 숨어 있는 질투와 시기를 무시하지 마라.
진짜 위험은 멀리 있지 않다. 곁에서 조용히 자란다.
사람을 다 품지 말고 분별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할수록 더 민감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 한잔 마시는 사이에도 당신의 정신은 깨어 있어야 한다.
"속고만 살았나 왜 이리 까칠하고 예민하고 이상한가" 의심하고 생각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제일 잘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다.
믿음과 신뢰는 함부로 주고받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언행으로 검증된 사람에게만 당신의 허신탄회함을 허락하자.
가까이 둘 수 있는 사람을 고른다는 건, 당신의 삶의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은 곧 환경이고, 환경은 곧 당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