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잠금

자물쇠

by belong 빌롱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나의 커리어와 외모 덕에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아주 많은 연애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과 후에도 무수한 남자들이 학교에서도 길가에서도 말을 많이 걸어와 연락처를 묻는 즉 헌팅 작업을 많이 당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서움을 잘 타는 성격이고 낯선 사람을 신뢰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매번 피하곤 했다.

결혼할 당시에도 나를 머나먼 곳에서 집 동네까지 따라온 사람도 있었다.

과천역에서 잠실역까지 따라왔다. 그때 우리 남편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남편 만나서, 여기 오는 길에 헌팅당했다며 증거도 보여 주었다.

그 남자는 무려 10살 이상 차이나는 한참 연하였는데 여태 계속 따라왔다며 번호를 원했다.

나는 그 와중에 나이가 궁금해서 물었다.

"몇 살이세요?"

"이제 서른 되었어요"

"그렇군요.. 저 나이 많아요"

"괜찮아요"

"저 진짜 많아요"

"괜찮아요"

"저 지인짜 많아요"

"괜찮아요"


그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괜찮다고만 말했다.

차마 결혼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거는 사람한테 약간의 미안함이라고 할까..

상대가 무안해질 것 같아서인가.. 결혼 후에도 헌팅 들어온 적 있는데 지금은 결혼했다고 유부녀라고 바로 말한다.

자녀까지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다 놀란다. 싱글인 줄 알았어요.

어떤 사람은 말한다. "거짓말이죠? 저 그렇게 귀찮게 하는 사람 아니에요~ 그냥 친구처럼 밥이나 먹고 지냈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그가 연락처를 계속 묻기에 귀찮아서 빨리 끝내기 위해 내가 연락한다고 상대의 연락처를 물었다.

내 핸드폰에 그가 부르는 대로 번호를 찍은 후, 그가 내 폰에 콜을 누르려고 손을 뻗는 걸 재빨리 피했다.

헤어지고 가는 길에 호기심이 생겨 그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카톡을 봤다. 곧 그가 나에게 톡을 보내왔다.

그때까지 내가 상대 번호를 저장하면 상대에게도 내 톡이 뜬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아차!" 깜짝 놀랐지만 하는 수 없이 물음에 응답해 주었다.

그때 알고 깜짝 놀랐다. 먼 곳에서부터 따라왔다는 사실을..

"카톡에 인스타그램 주소 올리시면 바로 남자 친구 생기실 것 같아요" 그때 내 카톡에는 내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 만나서 톡을 보여 주고 바로 차단했다.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따라다니며 관심 표현했던 건 사실이지만, 연애를 많이 해보지는 않았다.

20살 대학에 입학하고 미팅해도 별로였고, 소개팅도 많이 들어왔지만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미팅하면 항상 주목만 받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공주공주 했던 사람이어서 남자들이 칭찬만 잔뜩 하고 아주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면 부담스러워한 것 같다. 나도 아주 적극적인 사람하고만 만남을 했던 기억이 난다.

만난 횟수만 많았던 것 같다. 교회에서도 다 시시해서 내 성에 차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년기가 되어 배우자에 대한 금식과 기도를 1년간 했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금식하고 기도의 집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보내고 정확히 1년이 되던 날 12월, 소개가 들어왔다.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의 미국 교포였다.

첫 만남에서 공통점이 아주 많았다.

우리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셨고 나와 그의 어머니는 같은 학교 출신의 같은 성씨였다.

동생들은 같은 학교 동기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해서 다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반가워한다면 그건 인연인 거다.

그는 아버지 유전을 닮아 머리가 좋은 데다가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상남자를 좋아했었다. 사실 모든 20대 여성들은 다 상남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강철부대" 티브이 프로는 20대 여성들에게 오랫동안 시청률 1위를 누리며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 아들은 사나이야" 아버님의 이 한마디에 "그럼 나랑 맞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는 팔에 문신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약간 노는 사람들이 문신하지만 미국은 의사들도 문신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아주 흔하다.

교회에서 모범이 되는 반듯하고 신앙이 아주 좋은 내가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거를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실 나처럼 너무 교회 교회 신앙 신앙을 외치는 남자한테는 매력을 못 느꼈다.

한마디로 나는 교회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교회오빠사람을 너무나도 질색했다.

서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어릴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이상형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사로잡혔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4월 봄, 약혼식을 올렸다.

비자를 기다리는 사이, 내가 안 좋은 일에 휘말려서 인연을 놓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한 교회 친구도 내가 다닐 예정이었던 그쪽 교회에 있는 사람과 결혼했고, 그때 베프도 5년 뒤 내가 결혼해서 살게 될 주로 이민을 갔다. 베프 친구 남편의 베프친구도 내가 다닐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내가 올 예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한마디로 장소만 이동된 것뿐, 그 자리 그대로 친밀감을 형성하며 살 수 있었던 거였다.

지금은 다 끊었다. 내가 살며시 차단했다. 나를 다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미국에서 살고 정작 나는 가지 못했기에 끊고 싶었다.


약혼 후 곧 미국에 갈거라 모두가 약혼식에 와서 듬뿍 축하해 주었고 친척들은 울기까지 했다.

또래 친구들은 재벌과 결혼한다고 부러워했지만 나는 내가 아깝다며 응답했다.

장거리는 참으로 힘들다. 나와 그는 당연히 매일 통화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언제가부터 내가 힘든 일을 겪어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그때 아버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결혼할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말고 집에 있거라"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결혼 전에 돌아다니면 안 좋은 소문에 마가 낀다는 사실을 몰랐다.

누구나 원하는 그런 결혼을 앞두고 파혼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약혼까지 한 입장에서 long distance는 연애도 아니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 데 내가 소홀하는 바람에, 그도 멀어지고 시어머님과의 관계도 달갑지 않았다.

관계된 모든 분들이 다 정성껏 잘해주었는 데 내가 잘못된 길로 빠져 버렸다.

모든 게 다 내 불찰이었다. 내가 죄인이었다.

나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기억에 남는 법이다.

나에게 최선을 다해서.. 나를 끔찍이 생각해서 잘해주었던 사람.

그 사람이 갑이다.


그걸 시절인연이라고 한다.

그 시절에만 만날 수 있던 인연이다.

그 시절에는 때가 되었으니 쉽게 이루어지지만, 때가 지나면 같은 사람이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를 지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때가 온다.

때는 함부로 아무 때나 오는 것도 노력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시기란 게 있다.

그 시기가 힘들어도 잘 견디면 반드시 정해진 축복을 받게 되어 있다.

큰 축복은 큰 도전과 시련 뒤에 온다.

나의 말이면 생각할 필요 없이 무조건 오케이 했던 사람. 미국 오면 어디 어디 가고 해야 할 일 등을 매일 말하며 설렘을 함께 했던 사람.


그와 헤어지고 기도를 아무리 했어도 인연을 못 만났다.

교포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이도 많은 데 하루 벌어 하루 살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완전한 날라리였다. 나이트클럽에나 다니면서 한국여자나 꼬셔보려고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날라리까지 만났다.

혹시 교포만 소개해달라고 했느냐며 우쭐대고 꼴값을 떨었다.

역시 겸손하고 똑똑한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밖에 모르고 잘해주었던 사람이 갑이 되는 거다.

착한 사람이 인기가 많다. 자기가 잘났다고 재면서 으스대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도 도도한 여자가 인기가 없는 거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는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 갑이 되는 법이다.


결혼한다고 곧 떠난다고 다 알려졌던 사람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도 나를 이상하게 보아서 억지로 다녔다.

나를 부러워했던 또래들 다 결혼했는 데 마치 나만 문제 있는 사람처럼 노처녀로 산다는 건 정말로 최악의 삶이었다. 한국에 홀로 남고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때 내가 선택을 잘했다면 난 지금 미국 아줌마가 되어 있겠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뒤바뀔 수 있다.

미국 시댁에서 나를 아주 공주 모셔가듯 대해주었기에 나는 내가 받는 이 모든 것, 앞으로 받게 될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기에 미련이 남을 수 있는 거다.

미련이 남는 건 벌 받는 거다.

아직도 그와 함께 미국에 떠나지 못했던 그날을...

정해진 운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집채만 한 파도가 다 집어삼켜버린, 믿기 힘든 그때 그 상황을 꿈에서 헤매고 울며 비명을 지를 때가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때 얼마나 큰 충격으로 아팠으면..

아니면 상대 가족이 받았던 상처보다 100배로 내게 주어진, 받을 수밖에 없는 벌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곳, 너무나도 당연시했던 그 모든 것들.

그 이후 어떤 사람과 소개받고 만나든 성에 안 차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남자는 "도대체 이런 사람도 희망이란 걸 가지고 살까" 싶을 정도로 많이 모자란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저주를 받아 누가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사람들만 만났다.

물론 소개해주시는 분은 잘 모르고 소개해주었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도, 내가 급하니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상처받는 일이 반복되어 내 삶은 심각하게 피폐해져만 갔다.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결국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다.

파혼 후로 예정되었던 저주로구나.

내가 감당해야 할 저주였던 거다.


어느새 크게 액땜을 다하고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 내 남편이다.

20대에는 사실 우리 남편 같은 지식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공부만 한 모범생 같은 사람보다 잘 놀면서 공부도 잘하는 사람을 좋아했었는 데 사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만 했던, 한 우물만 파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많이 다르다. 의사도 교수도 흔히 지식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밖에서 보면 그 사람들의 본연의 직업을 모를 정도로 운동도 좋아하고 잘 논다.

나는 우리 남편이라는 남자를 만나고 천생연분이란 걸 알았기에 초고속으로 결혼하게 되었다.

우리 남편과 나는 궁합도 안 본다는 8살 차이다. 이 사람도 전에 그 사람처럼 똑똑하지만 모험심이 있어 세계일주를 한 잘 노는 사람이라서 나랑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토종스타일을 싫어했는데 미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여서 정감이 갔다.

사랑이라는 거를 우리 남편과 처음 해보았다.

전에 그 사람보다 훨씬 지금의 남편을 사랑한다.

"내가 어쩜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 까"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에게 고맙고 하느님께 감사한다.

어쩔 땐 아들 같고 어쩔 땐 친오빠 같고 어쩔 땐 친구 같고 때론 아빠 같기도 한 우리 남편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교회에서는 부부가 죽어서 사후세계에서도 똑같이 부부로 영원히 산다고 배웠는데 결혼 후 남편이 다니는 천주교에서는 부부는 지상에서만 살고 끝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검은 머리가 밥풀이 될 때까지"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게 전부인 거다.

그래서 신부님께 물어보았다. "다른 교회에서는 부부가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한다고 하는 데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신부님 말씀 "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어떻게 아는지.. 직접 가보았는지요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부부가 영원히 함께 한다는 믿음 아래 산다면 더욱 좋겠지만, 신부님 말씀이 옳은 것 같다.

아무도 가 본 사람은 없다는 사실.


나는 말한다. "우리 남편 오래 살아야 돼, 난 우리 남편 없이는 절대 못 살아. 혼자서 슬퍼서 어떻게 살아"

우리 남편은 말한다. "내가 죽으면 다른 남자랑 결혼해도 돼"

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남편 "슬프고 힘들게 사는 봐에야 행복하게 사는 게 낫지"

나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남편 "진짜 사랑하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되잖아."

나 "그럼 내가 먼저 죽는다면 어떻게 할 건데?"

남편 "다른 여자와 데이트해야지"

나 "난 우리 남편이 다른 여자랑 행복하게 사는 거 절대 못 봐서 다리몽둥이 부러뜨려서라도 나랑 함께 가게 할 건데?"

남편 경악하며 "우리 아내가 미저리였네"

남편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부부 싸움 날뻔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하니 애써 대화를 종료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여느 커플처럼 남산타워에서 사랑의 자물쇠를 했었다.

물론 나는 그전에도 무수한 남자들과 그곳에 가서 자물쇠를 잠갔다는 사실을 가기 전에 알려주었다.

많은 남자들이 나에게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기를 원해서 했지만, 딱 한번 어떤 이에게 내가 먼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지나면서 있길래 하자고 했는데 그는 이미 많이 한 듯 먼지만 쌓인다고 해서 안 한 적이 있다.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 많이 해봐서 아무 의미 없지만 그래도 오빠랑 안 해봤으니 그래 하자"


사랑의 자물쇠는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슨 종교를 믿고 어떤 가르침을 믿고 살던지, 결혼에 의해서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고

그 진정한 사랑이 있는 한, 부부는 영원할 수 있다.


보통 부부가 영원히 함께 산다고 하면 사이가 소원해진 부부는 말한다.

"이 왼수랑 죽어서도 함께 한다는 건 영원히 지옥에서 살라는 말인데 말도 안 돼."


그러지 말고

"왼수"가 아닌 "인연"으로 믿고 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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