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사람
이제껏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사랑받고 성숙함을 인정받는다.
내 의견과 감정이 중요한 것처럼 상대방의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
그런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이런 사람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네가 혼자 오해한 거니 나는 잘못한 게 없다."
혹은 "그럴 수도 있지, 별것도 아닌데, 왜 사과해야 하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그래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꼭 사과에 대해 인색하다는 특징이 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같고, 그런 표현을 하면 감정적으로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고, 왠지 내가 지는 것 같다.
상대가 문제를 삼으면 자기가 잘못한 일인데도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오히려 다투기 시작한다.
성숙하지 못해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
한마디로 7살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정신 연령이 높은 사람은 다르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적절할 때에 사용할 줄 안다.
설사 자기가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아도 상대가 자기가 한 일로 아파하면 사과할 줄 아는 성숙함을 지녔다.
그게 바로 문제해결능력에 포함된 겸손함과 상대방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기 자신이 처한 상황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그릇이 다르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큰 문제가 아닐지라도 상대에게는 아주 크나큰 아픔일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즉 성숙하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정신연령이 높기에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부탁을 들어준 것에도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고, 나에게 시간을 써준 것에 대해서도 당연히 고마워해야 마땅한 것을 친하다는 이유로 잘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그냥 넘겨버리는 사람은 정신연령이 매우 낮은 사람이다.
약속에 늦었다면 미안해해야 정상이다. 기다려준 상대가 화냈다고 해서 같이 욕하고 싸운다면 정신 연령이 매우 낮은 사람이다.
실수로 다른 사람 발을 밟거나 밀쳐도 미안함을 표시해야 한다.
"살면서 사람끼리 부딪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정신연령이 매우 낮다.
여럿 모인 자리에서 어떤 의견이 나오더라도 우르르 휩쓸려서 억지로 행동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밝힐 줄 아는 사람은 정신연령이 높은 사람이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화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다. 성숙한 사람은 이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자기감정을 직면하고 필요한 주장을 할 수 있다.
아닌 척 괜찮은 척했다가는 나중에 더 큰 불편함과 오해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소통에 문제가 있을 때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사람이 있다.
"왜 항상 무서운 눈으로 저를 째려보고 마주치게 되면 놀라시면서 즉각 피해 다니시나요? 평생 못 잊을 만큼 아픕니다"라는 물음에
"역시 무례하네, 너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니 코드가 안 맞아 그런 거야.
난 그런 적 없어. 어쨌든 너 혼자 오해한 거니 내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어떤 사람은 이 상황을 보고 자기는 그런 적이 없기에 더 이상 오해받기 귀찮고 싫어서 끊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상황은 정신연령이 매우 낮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태도다.
이 사람의 말투만 봐도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겠다.
확 끊어서 이성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감성적인 사람이다.
상황을 정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정리해야 한다.
오해가 풀리지 않고 상황에 문제를 키우면 남는 건 적이 될 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알아차려야 한다.
감정과 욕구는 그 사람의 언행을 만든다. 정확히 알아차리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위와 같이 감정적으로 격해지며 무례하다고 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자신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조절해야 되는 데 언행이 제어가 안되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려 상대의 기분만 더 상하게 한다.
상대방 생각 안 하고 반박하고 결론부터 낸다.
자신은 이성적이라 더 이상 얘기를 끌고 갈 필요를 못 느끼는 건 본인 생각이다. 이렇다면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고 때로는 의도와 다른 말을 하기에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기 이해와 수용이 필요하다.
수용이란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강점이나 약한 부분도 편안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이해가 높아지면 타인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가능해진다.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공감 능력과 감정조절능력이 있어야 원치 않는 상황에서 발생되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더라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정신적 성숙도를 높인다.
차분히 상황을 고려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갈등도 풀린다.
정신연령이 높아지려면 자기를 먼저 이해할 줄 알아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도 생기는 거다.
모두가 성숙함과 미성숙함을 가지고 있다.
성숙함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 지니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느냐 또는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느냐도 성숙도를 알 수 있는데 그건 말투에서 차이가 확 드러난다.
"난 그럴 의도 전혀 없었는데 혼자 오해하고 아파한 거니, 난 아무 잘못이 없어. 그러니 사과할 필요도 없고.
사람이 참 불쌍하고 안 됐네. 쯧쯧 가엾다."
이 경우는 갑으로 살아왔기에 갑으로 끝을 맺으려고 하는 거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이를 갑으로 존중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정신연령이 높은 사람은 결코 상대방을 초라하게 만들며 끝을 맺지 않는다.
진정으로 잘 배운 사람은 상대 입장에서 처한 환경과 상황을 고려할 줄 알며 말투도 품위 있고 부드럽게 한다.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안다.
"너까짓게 감히 나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디서 나한테 감히 무례하게" 이런 뉘앙스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상대를 무시하고 짓눌러야지만 자신이 이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연령이 매우 낮은 사람이다.
성숙도의 차이는 관계 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차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