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ong 빌롱 Oct 03. 2024

약혼

engagement


미국에서 결혼하기로 하고 비자를 준비했다. 오빠는 4월 말에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하니까 서둘러 약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한복드레스를 맞추었고 오빠는 턱시도를 맞추었다. 그리고 백화점 들러서 이것저것 쇼핑하며

식을 준비했다. 명동 평소 잘 가는 미장원에서 헤어와 메이크업하고 한복드레스로 갈아입고 리무진 타러 가는 길에 길거리 사람들 모두들 나를 보고 너무 곱고 아름답다며 환호를 질렀다. 동생이 최대한 빨리 예약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았고 W에서 우리는 약혼을 거행했다. 이제 곧 미국 가서 결혼할 거니 한국에 지인들은 결혼식에 못 오니까 인사치레 한국에서 말은 약혼이지만 우리 쪽에서는 결혼식을 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기쁘게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고 싱글인 내 친구들과 언니들은 하나같이 마치 사연을 안다는 듯이

 “이루어질 사람들은 빨리 이루어진다니까.. 인연이 아니면 어떻게 해도 이루어질 수 없어!! 정말 잘됐다..”

하객들 모인 자리에서 “ 너랑 결혼하고 싶어도 마음에만 두고 말 못 한 형제들이 많을 거다. 넘볼 수가 없지..”하며 많은 친구들이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교포와 결혼한 지영 언니는 “야 난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했어!!”라고 축하해 주며 아주 기쁘고 환하게 나를 안겨주었다. 어르신들은 전부 다 신랑이  남자답게 잘생겼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의 외모는 완벽한 미국스타일이었다. 당연히 미국 사람이기에 미국 남자였다. 미국을 잘 아는 사람은 그의 외모를 보고 완전 미국 사람이네.. 신랑 멋있더라.. 사나이답게 책임감 있고 듬직하게 생겼다고 칭찬하고 한국 친구들은 내가 오빠를 사람들이 다 잘생겼다고 한다고 하면 “네가 너무 아까워.. 너랑 뭐가 닮았어.. 제 눈에 안경 인가 봐.. 야.. 하나도 안 닮았어.. “ 한다. 나중에 그의 집에 한국민속촌에서 둘이 찍은 사진을 크게 인화해 거실에 걸어 놓은 액자를 보면 웃는 얼굴이 그와 진짜로 닮았다는 걸 안다.

26살 때부터 '미래의 남편'이라고 책상머리에 붙여 놓은 사진이 떠올랐다.

나는 운동도 잘하면서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강하면서 똑똑한 사람을 원했다.

공부만 하고 운동신경 없는 범생이도 질색했고 운동만 잘하는 운동 쪽에 사람도 정말 싫었다.

둘 다 누구나 인정할 만큼 잘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어느 쪽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운동하는 사람이면 운동만 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면 공부만 했다. 요즘은 똑똑한 직업들도 운동 많이 해서 내면에 상남자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한우물만 파자는 시대였다.

미국은 좀 덜했다. 공부도 잘하면서 강한 사람들이 있는 편이었다.

바로 이 사람, 내 이상형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게 문득 생각났다.

와, 그러고 보니 생김새며 외모가 아주 많이 닮았다. 그것도 4살 터울의 미국 교포라니..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은 나를 닮아서 보스 기질이 있고 운동을 좋아해.

대학생 때 길거리 지나가는데 덩치 큰 멕시코인들이 시비 걸어서 17대 1로 싸워서 이겼어.

그는 강한 사람한테는 강하고 약한 사람 앞에서는 약해지는 정의롭고 선한 남자였다.

그 후 오빠를 인천공항으로 보내고 곧 만날 거라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갔다. 아버님께서 곧 미국으로 갈 테니 회사도 그만두고 짐도 정리해서 미국으로 보내라고 하셨다. 회사가 문제였다. 학과장님께 어머니가 찾아와 말씀드리고 마침 학기 중간이 아니고 끝날 때라서 다행으로 행복하게 살라며 기쁜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다. 다음 선생님께 인수인계는 꼭 해야 한다고 해서 빈틈없이 신속하게 처리했다.


약혼식 후 오빠와 난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미대사관에 인터뷰하러 가는 날. 예전 미국으로 선교사업 갈 때 교회에 가입한 지 2년이 안 된 나에게 선교비자를 줄 수 없다고 미 대사관에서 거절당했었다. 종교비자는 교회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야 발급받게 돼있었다. 그 때문에 미국 들어가는 날짜가 연기되었었다. 선교사님의 부탁으로 아는 미국 영사관 형제님이 비즈니스 비자로 10년을 주셨다. 그래서 또다시 미대사관에 갈 필요 없이 비행기 수속을 밟고 미국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이번에 혼자 미대사관에서 인터뷰 중 과거에 왜 미국에 갔냐는 영사의 질문에 선교사업 갔다고 하니까 어떻게 비즈니스 비자를 받고 선교사업을 갈 수 있느냐며 빨간 도장을 찍으며 불법체류했다고 10년간 정지를 주었다. 나는 너무나도 속이 상하고 슬펐다. 비자사무실에서 그런 것을 귀띔 해주셨으면 좋았을 걸...!

우리 가족과 그의 가족 또 오빠.. 너무나도 실망했다..

특히 나..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오빠는 걱정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누구의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되었다.


#인수인계#약혼#비자#미국#교포#인연#이상형#

이전 14화 어느 봄날의 운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