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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n 20. 2021

청춘이라, 아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100만 분의 1.

대한민국 민방위 신분 덕에 미국에서 제공한 100만 명 분 얀센 백신의 대상자로 선택된 행운을 누렸다.

사전예약을 마치고, 백신 접종 후기를 훑어보았다. 고열, 근육통, 어지러움 등 후유증이 접종 후 하루에서 길게는 이틀 이상 간다. 젊을수록 면역활동이 활발해 더 고생한다. 등 후기는 다양했다. 내가 백신을 맞기 전까지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싶었다.


얀센 백신 접종이 개시된 첫 날 오후,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백신 접종을 받았다. 백신 주사는 여타 주사와 비슷하게 따끔한 정도였다. 병원에서 징후를 지켜보기 위해 30분 정도 머물렀고 별다른 이상이 없어 집으로 귀가했다. 별 거 없네? 내심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접종은 순조로웠다. 외출한 아내가 차려놓은 닭가슴살 야채볶음을 흡입했다.


접종 후 3시간이 흐른 저녁 8시. 이때부터 미약한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려 하니 머리가 더 지끈거려 오늘은 휴식을 취해야겠구나 싶어 TV를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첨탑에 달린 종이 주기적으로 울리듯 두통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눈만 감고 있을 뿐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일렁이는 머리 안에 갇혀 깨어있었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눈이 떠졌을 땐 접종 후 12시간이 지났을 무렵인 새벽 6시경이었다. 화산활동을 시작하듯 온몸이 뜨겁고 저릿저릿 아파왔다. 이제부터 시작인 건가. 두려움이 엄습해 진통해열제를 삼켰다. 약기운이 퍼져 조금 나아졌나 싶다가도 이내 열과 통증이 다시 올라왔다. 안 되겠다 싶어 이른 시간 부서 차장님께 오늘은 출근이 어려울 거 같다고 문자를 남겼다. 다행히 회사에는 백신 접종 후 특별휴가가 생겨 소중한 연차를 아낄 수 있었다. 한편으론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긴 휴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휴가를 내는 게 다소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내 몸이 출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날 타일렀다.


새벽부터 몰아친 통증과 고열은 꼬박 한나절이 넘게 나를 괴롭혔다. 입맛이 뚝 떨어졌지만 기운을 차리고자 아침으로 아내가 끓여준 소고기뭇국을 들이켰다. 아내는 음식과 얼음팩으로 옆에서 정성껏 간호를 해줬다. 새벽부터 시작된 그녀의 정성 어린 병간호와 진통해열제 6알의 도움 덕에 접종 후 24시간이 지났을 무렵부턴 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지럽던 머리도 맑게 갰고 불덩이 같던 몸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백신 항원과의 사투 중 흘린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소파 시트 위에 몸을 뉘어 TV를 보고 있던 늦은 밤. 부서 차장님께 톡이 왔다.


아파서 감정이 더 센티해졌던 걸까. 별 것 아닌 회사 상사의 안부 문자에 가슴이 찡해졌다. 부서를 옮기고 난 뒤 약 4개월 동안 차장님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굳이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그럴 이야기를 나눌 회식도 코로나 덕(?)에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사무적 관계로만 생각했던 차장님이었다. 민방위 신분 덕분에, 청춘이라서 더 아픈 덕분에, 직장 상사의 단 두 줄이지만 진심이 담긴 안부 문자를 받게 되다니. 코로나 항체와 직장 상사와의 유대가 생긴, 어느 감사한 6월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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