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공백

병원이 싫어요.

by 이진

나는 병원이 싫다. 병원을 감돌고 있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부터 접수, 진료, 수납을 위한 한없는 대기시간, 생과 사가 오가는 절체절명의 공간이라는 점이 병원을 싫게 만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커오며 병원을 자주 갈 일은 없었다. 다만 한 번씩 병원을 가게 되면 내가 다쳤거나, 다른 사람들의 병문안을 갈 때였다.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는 병원 체류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한없이 마음은 내려앉는다.


병원에서 최악의 순간을 꼽는다면 전신마취 후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다. 지금까지 살면서 2번 전신마취를 겪어봤다. 특히 18살 때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뒤 느꼈던 고통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같은 학교 친구와 말다툼으로 시작돼 주먹다짐까지 이어졌었다. 이때 나는 거의 일방적으로 맞으면서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 광대뼈에 금이갔다. 피범벅이 된 얼굴을 교복으로 부여잡고서 집에 돌아왔고, 내 얼굴을 보고서 엄마는 거의 반쯤 넋이 나가셨었다. 응급실로 이송된 뒤 부기가 빠지길 기다리고서 수술에 들어갔다.


부모님께 전해 듣기론 수술을 끝마치고 회복실에서 내가 깨어났을 때 발버둥을 치며 욕을 해댔다고 한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고 고통이 심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셨다. 실제 내가 병실에서 정신이 들었을 땐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한순간에 나를 난도질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역한 마취가스 냄새가 코를 찌르듯 파고들어 와 세포 하나하나를 깨뜨리는 것 같았다. 숨을 쉬고 싶지 않을 정도의 역함이었다. 마취가스 냄새뿐 아니라 콧구멍과 입 사이로 꽂힌 호스들 때문에 숨쉬기가 버거웠다. 가슴팍엔 호스에 연결된 하얀 팩 같은 게 있었다. 팩은 코 안쪽에 엉겨 붙은 피를 빼내기 위한 용도였다. 마취가 풀리면서 수술부위 또한 인두질이라도 당한 듯 뜨겁고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다. 수술하고서 병실에 돌아왔던 그날 밤 하루는 내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고통의 밤이었다.


마취가스가 증발되고 진통제를 투여받으며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고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팔과 얼굴에 주렁주렁 호스들을 매단 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수술하고 2주가 넘어서야 퇴원을 했다. 입원기간 동안 친구들, 친척, 부모님 지인분들 등 많은 분들이 병문안을 오셨다. 그때는 사람들이 병문안 오는 게 달갑지 않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싸움으로 비롯되어 이지경이 나서 스스로가 혐오스럽기도 했다.


조O진, 17세, 정형외과

내가 있던 환자 침대엔 나의 만 나이와 가운데 글자에 공백이 들어간 이름표가 걸려있었다. 한 살 어리게 나와서 기분이 괜스레 좋아졌다가 이름 사이에 새겨진 공백에 눈이 갔다. 날 이루는 무언가가 저 동그라미 안으로 오고 나간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스러웠다. 자존감이 일순간 무너지며 내 자아 또한 쓸려나갔다. 감정표현에 서툰 내가 부모님 앞에서 거의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시기다. 다시는 공백이 새겨진 이름표를 보고 싶지 않았다.




어제 오전 아내는 담낭에 생긴 용종을 제거하기 위한 담낭 절제술을 받았다. 지난달 같이 받은 건강검진에서 아내는 용종 소견이 나타났다. 검진센터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았다. 대학병원에 가서 CT촬영을 해보니 용종임이 확실해져 수술이 결정됐다. 복강경에 1시간 정도의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그래도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임에 걱정이 됐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는 병동 출입이 불가했다. 수술 전날 입원 수속을 한 뒤 아내와 병동 앞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애달픈 마음이 들끓었으나 어찌할 수는 없었다. 처음 안내를 받을 땐 수술 당일날도 입회가 어렵다 했는데 확인해보니 수술 날엔 가능하다 하여 어제 하루 휴가를 내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아내가 있는 9층 병동 앞 엘리베이터에서 수술 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 자릴 잡았다. 대기실 벽에 걸린 TV에는 수술 진행 현황이 표시됐다.


원O림, 수술중, 외과

화면에 표시된 아내의 이름엔 공백이 새겨져 있다.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의 공백을 마주쳐야 했다. 그 공백 속으로 하염없이 근심과 걱정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동그란 구멍이 가슴에 파여 내 일부가 빠져나갔다. 수술을 기다리며 읽으려고 가져왔던 책은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 중 상태는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회복 중으로 바뀌었다. 회복시간까지 2시간 정도 걸렸을 때 수술실에서 아내는 나왔다. 마취에서 깨어나 통증이 올라온 아내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손을 잡고서 고생했다 많이 아프지. 몇 마디 나누고선 또다시 병동 앞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취기운과 통증에 앓고 있을 아내를 혼자 두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영 편치만은 않았으나 담당교수님께 수술이 잘 됐다 안내를 받아 걱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수술은 용종이 암으로 전이되는 걸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그 말인즉슨 앞으로 아내의 이름에 공백이 새겨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내일 퇴원하는 아내의 병실 침대에는 여전히 공백이 들어간 이름표가 달려있을 테다. 내일이면 다시 자기의 이름을 찾고서 평소처럼 씩씩하고 밝은 아내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빠는 내 어디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