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운전을 잘한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덕분인 것일까. 피티를 받을 땐 트레이너에게 운동 영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운전 잘하는 아내 덕분에 여러모로 좋은 점을 누리며 살고 있다.
양가 부모님께서 지방에 있는 터라 우리는 장거리 운전할 일이 잦다. 나 혼자서 도맡아 운전하기엔 꽤나 긴 거리지만 아내 덕분에 한결 수월하다. 장거리 운전의 경우 보통 내가 먼저 운전대를 잡고 출발한다. 한창 목적지로 가는 도중 중간에 휴게소를 들러 용변을 보고 간식을 사서 차로 돌아온다. 아내가 임무교대를 제의하면 나는 대부분 흔쾌히 받아들인다.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휴게소에서 갓 사온, 알감자를 위시한 간식들을 운전하는 아내의 입으로 흘리지 않게끔 배송해준다. 배송과 동시에 DJ도 겸한다. 운전하는 아내를 위해 비트감 있는 신나는 노래를 깔아준다. 조수석에서 과업을 마친 뒤 나는 신발을 벗고서 대시보드에 발을 올려 걸터앉아 휴식을 즐긴다.
아내는 고속도로 주행뿐만 아니라 주차도 능숙하게 해낸다. 한때는 정렬을 맞추지 않은 채 주차한다고 면박을 주곤 했는데 이제는 칼각주차의 달인이다. SUV라 차 크기가 꽤 나가지만 익숙해졌는지 주차선에 딱 맞춰 주차를 해내는 경지에 올랐다. 비록 주차하며 한두 번 자동차에 스크래치를 남겼지만 너그러이 넘겼다.(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고, 내 자동차에 난 온갖 상처에 무던해져 그닥 신경 쓰진 않게 됐다.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남편'과 관련된 많은 썰이 돌아다닌다. 대개 운전에 서투른 아내를 남편이 조수석에서 운전을 가르쳐주다가 비운의 결말을 맞이하는 게 보통이다. 아내 입장에선 긴장하며 운전하고 있는데, 옆에서 뭐라뭐라 알려줘도 잘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남편 입장에선 별 거 아닌 것들에 실수하고 긴장하는 아내의 모습이 답답해서 짜증을 내는 것일 테고.
실제로 내 주변 지인 중에서도 마음 놓고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남편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보험까지 들어놓고서도 운전을 맡기지 않는다 한다. 대개 이유는 '불안해서'였다. 불안해서, 힘들더라도 차라리 자기가 운전하는 게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 동시에 운전 잘하는 아내를 만났다는 게 참 행운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운전 잘하는 아내를 뒀음에도 조수석에 앉으면 가끔씩 나도 불안해질 때가 있다. 아내가 가속을 너무 빨리하거나, 급제동을 할 때다. 나도 한때는 고속도로에서 140km/h는 기본으로 생각하며 마구 밟아댈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추월차선에서 120km/h를 밟을까 말까다. 이에 비해 아내는 질주본능이 남아있는지 140km/h는 너끈히 밟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집에 가스불이라도 켜놓고 왔냐며 타이르곤 한다. 제동 할 때도 앞차와의 간격, 브레이크등 점멸 등을 확인하고 천천히 했으면 좋겠는데 아내는 가끔 세게 브레이크를 밟아 날 놀라게 하곤 한다. "쏘리" 한 마디로 아내는 상황을 무마시키지만, 놀란 가슴이 제자리를 찾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아내의 운전실력을 남편으로서 '평가'해봤지만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드라이버는 아니다. 나도 때로는 급제동하거나 차선 정렬을 제대로 안 한 채 운전해 아내를 놀라게 할 때가 왕왕 있다. 때문에 2년 넘게 함께 운전대를 공유해온 경험의 결론은 결국 이것이다.
조수석에 앉으면 참견하지 말자.
각자의 성격과 스타일에 따라 운전하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에, 방어운전을 모토로 운전한다면 우리 둘 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서로에게 완벽한 드라이버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2주 전, 어버이날을 맞아 처가에 내려갔다 왔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올라오는 길은 무척이나 답답했다. 청주에서 인천까지 올라오는 데 평소보다 배 이상 걸렸으나 크게 힘들진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로 운전대를 번갈아가며 잡았기 때문이다. 휴게소에 들러 나는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겨준 뒤 조수석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아내를 보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부부 사이에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운전 잘하는 아내가 좋은 건데 종종 운전을 '나처럼' 하는 아내를 바랐던 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나고 아내는 아내다. 나처럼 하길 원하지 말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생활도 운전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종종 나처럼 하라는 마음을 깎아 다듬어 지금처럼 아내답게 살기를 바라야겠다. 지금의 아내가 좋아서 결혼한 것이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