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청결 순이 아니잖아요
수도꼭지 자물쇠 사건 이후, 우리는 물을 쓰는 걸 포기했다.
생존에 필요한 물, 모두가 원하는 그것을 작은 자물쇠로 잠가두고 우리만 쓰려던 심산은 배고픈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겨두고 묘생의 양심을 운운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일단 지부장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씻을 수 있는 최소한의 물을 공급받아 숙소 안에 두고 사용하기로 했다.
양치질은 생수로.
머리는 안 감는 걸로.
샤워는 꼭 필요하면 1 바가지로.
Y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아 참! 샤워실이 있으니까 필요하신 분은 사용하세요!”
뭐, 물도 없는데 샤워실이 있다는 게 더 이상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속는 셈 치고 Y팀장님을 따라나섰다.
샤워실은 천정이 없이 얇은 철판으로 3면을 막고 덜렁덜렁한 문이 달려있는 1평 남짓한 구조물이었다. 물론 샤워기는 없다.
물 한 바가지를 거기에서 끼얹고 나오면 샤워 끝.
이번엔 화장실을 보여주신단다.
화장실은 다행히도 남녀 구분해서 가도록 2개가 있었는데…
(이제부터 더러움 주의)
예상대로 예전 우리네 시골 화장실 같은 푸세식이었다.
문제는, 한국 시골은 응가를 정기적으로 퍼내며 사용했겠지만 여기는 케냐다.
다 차오르면 막고 새로 구덩이를 파는 시스템.
우리 팀이 갔을 때도 이미 70%는 차 있는 상태였다.
나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보고 싶지 않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치 테트리스처럼 빈 공간에 가능한 맞춰보려고 애를 썼다. 내가 머무는 동안 100%가 채워지는 불상사를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물로 살다 보니 웬만한 건 물티슈로 대충 씻는 게 일상이 되고, 머리는 떡이 되기 시작하면서 모두 자기 직전까지 모자를 쓰고, 일어나자마자 다시 모자를 쓰고 세수를 했다.
물을 쓰면 감을 수야 있지만 모두가 머리를 감고 싶을 텐데 한 두 명이 감기 시작하면… 금방 동이 나고 말 테니…
우리는 머리도, 알 수 없는 냄새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물 한 바가지를 들고 1평 샤워장에서 샤워는 할 수 있게 했다.
땀 흘리며 하루를 보낸 뒤 누리는 물 한 바가지가 어찌나 개운하던지.
수도꼭지를 열면 당연히 물이 나오는 삶에 익숙했던 우리가 이전엔 느낄 수 없었을 행복이다.
물탱크에 물을 잠가두며 우리끼리 씻었다면 이렇게 개운한 마음이 들었을까?
모래바람이 날리는 황무지 한가운데서 우리는 또 나름의 행복을 발견하며 케냐에 적응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