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이번 케냐팀의 팀장님은 J선배님.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의 다른 법인 소속 J선배님은 팀을 잘 이끌어주시는 좋은 리더가 되어주셨다.
J팀장님(=선배님)과 함께 계획한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마사이 마을 학교 아이들과의 프로그램은 그리기 수업, 축구, 페이스페인팅 등과 아이들을 위한 식사나눔이었다.
케냐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것 한 가지. 오지 중의 오지인 이 마을 학교에는 아트 수업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기 수업을 위해 크레파스를 가져간 우리 팀.
에티오피아 때는 크레파스를 가져가려고 싸우는 아이들을 보았다면, 여기는 크레파스라는 것을 처음봐서 어떻게 손에 쥐는 지 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그림 그리기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
그러나 곧 쓱쓱 마음 속 그림들이 종이위에 펼쳐졌다.
학교 선생님께 들어보니 종이가 귀해서 아이들의 성적표 표지는 잡지 등의 두꺼운 종이를 오려서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림 수업을 마치고 남은 종이를 드리니 너무 좋아하시며 하시던 말씀이었다.
빈곤에 가려진 아이들의 반짝이는 마음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아프리카 가정들은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것이 쉽지 않다. 마사이 가족들은 기본 가족수가 5인을 훌쩍 넘는다.
한창 먹을 나이인 아이들이 많은 가정들은 늘 굶주림에 허덕인다.
아이들을 보던 J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우리, 아이들을 좀 잘 먹이면 좋을 것 같은데..."
"예산이 많지는 않은데, 한번 마을 리더들이랑 상의를 해볼까요?"
"우리 가져온 빵만 줄게 아니라, 고기를 좀 먹이면 좋을 것 같아."
마을리더들 긴급소집.
지부장님께도 상황을 말씀드렸다.
"아이들을 먹이고, 마을 사람들도 와서 함께 먹으려면 소를 얼마나 잡아야 할까요?"
예산이 빠듯한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
마을 리더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소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소 한마리?
한국의 소였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는 케냐. 여기 소들은 가죽밖에 없는 스키니 카우(skinny cow).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 충분하다며 허허허 웃는 마을 리더분들.
예산에 없던 지출이기에 팀원들과도 함께 상의를 했다. 만장일치로 모두 좋다고 하여 통과!
그래서, 우리의 학교 급식시간은 갑자기 마을 잔치로 변했다.
마사이에게 소는 재산이기 때문에 소를 잡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마른 소를 잡고 해체하는 전 과정을 직접 보고 싶지는 않아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 팀원인 초딩들이 중계를 해주었다.
마을 리더들은 내장 등의 부속물을 따로 챙겨 그 분들의 파티를 준비하시고, 나머지 살들은 마당에 올려놓은 큰 솥에 넣어서 불을 지피고 끓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급식시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그리고 마을 어른들이 모두 줄을 서서 빵과 함께 고기를 받아 식사를 했다. J팀장님은 무조건 아이들 먼저 먹이도록 현지 교사들에게 요청하셨다.
고기는 무척이나 잘게 썰어 1인당 몇 개 되진 않았지만 그 국물에 빵을 찍어 맛있게 먹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보니, 소 한마리가 마을을 먹이는 것이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혹시 모자라지나 않을까 싶었지만, 어찌어찌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맛있게 한끼 식사를 함께 했다.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보이고, 가능한 범위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충실함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주어진 예산과 프로그램으로 일을 완수하는 것 vs
배고픈 아이들, 배고픈 마을 사람들의 마음 너머를 읽는 것
내가 팀장이었으면 보지 못했을 그 시선.
고기 부페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은 음식도 아니었지만 마을 잔치를 열어주고 싶은 넉넉한 마음을 가진 우리 팀이 자랑스럽고, 아이들을 향한 긍휼의 시선으로 의견을 내 주신 팀장님의 마음을 배우게 된 마사이 마을 소 잡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