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마사이 다리 길이 기준이잖아요!!
어둑어둑해지는 늦은 오후, 마을 회관에 삼삼오오 마사이족들이 모여들었다.
바로, 홈스테이 간택의 시간.
에티오피아팀 인솔 시에는 마을이 다 근방에 있었고, 거리도 비슷비슷했다.
그런데 현지 지부장님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 홈스테이는 거리가 제각각이라고 했다.
어떤 마사이는 오토바이를 몰고 오기도 했다.
팀은 웅성이기 시작했다.
"오토바이까지 타고 온 거면, 좀 먼 곳인가 봐."
"나도 오토바이 타고 가고 싶다..."
누가 어디로 갈지는, 지부장님과 마사이족 마을 리더가 결정하고 우리는 그저 간택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
안도의 미소와 함께 나가는 팀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오토바이 조가 부럽기도 하고, 나는 집까지 어느 정도 걸리려나 긴장이 되기도 했다.
이윽고, 내가 속한 조 차례가 되었다.
활짝 웃는 마사이 아저씨와 함께 나선 길.
그 사이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달빛만을 의지해서 걷는 시간.
다이소에서 구입한 휴대용 미니 손전등은 그냥 장난감이었다.
어느 누구의 발자취도 남아있지 않은 황무지에 길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길도 없는데 방향을 어떻게 알고 걷는 거지?'
‘가도 가도 황무지인데 집이 나오긴 하는 거야?’
주뼛거리다가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인 내가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되나요?"
"응, 거의 다 와가, 금방이야. 금방!"
"도착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30분이면 도착해요!"
30분......!
그래, 금방일 것이다.
봉사활동 기간에는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핸드폰 등을 잘 보여주거나 켜지 않는다. 귀금속 등도 다 빼고 오도록 가이드한다. 견물생심, 비교가 될만한 물건을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이자 지혜이기 때문. 게다가 폰은 배낭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폰이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길이 없는 나는 무장정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하필 손목시계도 안 차고 있을 건 뭐람.ㅠㅠ
체감은 2시간쯤 온 것 같은데... 아직도 가고 있는 우리 아저씨.
다리는 천근만근, 다 큰 처자가 이 황무지에 더는 못 걷겠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
초1 수업시간, 화장실이 급한데 손 들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울었을 때 느꼈던 트라우마가 시동을 부릉부릉 걸고 있었다.
서걱서걱. 마른풀과 흙 사이를 지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한 이 시간.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 다리와 뇌가 따로 놀 지경인데..
바. 로. 그. 때.
눈물을 삼키며 올려다본 하늘에 펼쳐진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
.
.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참아온 눈물의 성분이 고통에서 황홀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들었다.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전기가 없는 곳이라고.
칠흑의 어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영겁의 시간 같은 이 타이밍.
창조주의 신비가 수놓은 이 별들을 보기 위해 나는 그렇게나 걸었나 보다.
마사이에게는 퇴근길 풍경이었을, 케냐의 어느 밤하늘을 보는 감격으로 버티고 달래서 드디어 소똥집에 도착했다.
길은...
가 본 사람에게는 길이고,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황무지일 뿐이라는 교훈과 함께.
아직도, 실제로 집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단언컨대! 30분은 절대 아니었다.
그건 마사이 다리 길이나 가능하다!!
나는 단신의 한국인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