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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oved Oct 12. 2021

내가 미안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물탱크야, 누가 더 잘못한걸까?

아프리카 나라들이 물부족 국가라는 것은 이전 에티오피아에서 체감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에피소드는 여기.

https://brunch.co.kr/@beloved7/10


그래도, 에티오피아에서 우리가 갔던 곳은 시골 깡촌이 아닌, 대학교도 있는 나름 큰 지방도시였다.


케냐 마사이족이 사는 이 지역을 처음 왔을 때, Y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마을 들어가면 편의점이 많이 있을거야. 뭐 사먹고 싶으면 거기서 사먹어!"

아니, 이 시골 동네에 편의점이 있다고??


동네에 가서 보니, 편의점은 발렛주차요원들이 머무는 작은 휴게공간만한 크기의 양철 슬레이트 구멍가게들을 말하는 거였다. 기름, 옥수수가루, 현지 사탕 등을 파는 아낙네들의 비즈니스 현장.

어쨌든, 편의점이 맞긴 맞네. 하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한 아프리카.

이 동네는 물이 한 방울도 없는 황무지에 세워진 마을이었다. 물론 전기도 없다.

드넓은 황무지©beloved

동네사람들은 멀리서 물을 길어와서 최소한의 물로 생활하고 있었다.


박쥐를 본 충격이 가시지 않은 다음날 아침.


다행히 희소식이 있었다.

지부장님께서 물차를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센터가 아닌 고아원 건물을 숙소로 내어주신 것이 마음에 걸리셨나보다.


수도시설 자체가 없는 숙소와 마을.

지부장님은 물차를 불러서 동네 한 켠에 놓인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셨다.


물이 채워지는 걸 보면서 담당자로서 팀원들에게 미안함이 조금은 덜해졌다.


그런데…물차가 떠나자, 지부장님은 물탱크 아래 달린 수도꼭지를 돌리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잠그시는게 아닌가!

이렇게 생긴 수도꼭지다. 우리동네 사진이 없어서 다른 분께 사용을 허락받은 사진(출처:여행하는무카사 https://blog.naver.com/ljubavu/222432889905)

나중에 알고보니 물이 귀한 아프리카는 이런 자물쇠 달린 수도꼭지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생전 처음보는 풍경인지라 눈이 휘둥그레.


"잘 잠궈두고 필요할 때 쓰세요."

 "예?"

"안그러면 사람들이 다 가져가서 팀이 쓸 물이 없을 거에요."


손에 쥐어주신 열쇠를 보고나니, 물이 들어온 것을 보고 몰려든 마을 주민들 보기가 민망했다.


자물쇠로 잠궈두고 우리만 실컷 물을 쓰자니,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렇다고 물을 다 가져가버리면, 우리팀은 쓸 물이 없으니 그것도 안될 일이다.


'동네 사람들, 미안해요. 한국에서 온 우리가 조금 이기적이어도 용서하세요.'


우리를 쳐다보는 동네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머쓱하게 웃어보이며 일단 열쇠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팀원들에게 알렸다.

물은 그나마 좀 쓸 수 있다는 소식에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잠깐의 미안함은 눈감으면 될 일이었다. 받아든 열쇠는 만석지기 곳간열쇠처럼 가방 안쪽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침세안에 부지런한 한 여성팀원의 외침.


"간사님!!!!!!!!!!"(나는 팀장이 아니었다)

"네?"

"물이, 물이 안 나와요!"

"네에에?!"


이건 또 무슨 일이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허겁지겁 물탱크로 가보니…

자물쇠는 이미 뽀개서 잠금해제.


마을 사람들이 밤에 자물쇠 고리를 부수고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다 퍼간 것이었다.


전날, 마을 사람들의 웃음은 나의 웃음과 같은 웃음이었다.


나: 웃으며(미안해, 우리만 물을 쓰게 되어서..)

동네주민들: 웃으며(아니야, 우리가 더 미안해, 그 물은 우리가 쓸거거든...)


서로가 웃으며, 서로가 미안해하는...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만 있는 곳, 케냐 마사이 마을에서 진정한 오지체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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