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이 시점에서 이토록 위험한 앨범을 다시 재생해본다는 사실은 일종의 넌센스다. 누군가의 타이핑으로 세간의 주목을 이끌던 스타들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감내해야만 하는 차가운 미래 세계에 대해 이 영화는 거꾸로 된 예언을 한 셈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악마성을 외부로 분출한 채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온라인 속의 커뮤니티를 통해 드러낸다. 20년이 지난 우리의 사정은 이와 정 반대다.
오프라인에서의 자아와 온라인상의 자아를 극명한 차이로 내몰아 선과 악의 간극을 들여다보는 것으론 이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턱 없이 부족하다. 없는 상처에서 고통을 느끼고, 오히려 실재하는 상처에는 무감각하다는 이 기묘한 리액션은 동시대의 소극적인 연대를 구성한다. 이들은 결국 여러 감정을 지닌 한 시대의 한 사람일 뿐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보리밭 위로 수직이기를 자처하는 인물들의 몽타주는 ‘에테르’로서의 연결점 그 이상이다. 그들은 오직 이 시기에만 솟아있을 수 있는 흐릿한 젊음이다. 때문에 영화에 시종 흐르는 드뷔시와 릴리의 음악은 뭉뚱그려진 시기에 필요한 하나의 장송곡처럼 들린다. 이는 이와이 슌지 스스로가 지니고 싶어 하는 영화 세계 총체의 선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