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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하 Oct 25. 2022

우스꽝스러운 긍정

배드 럭 뱅잉(2021)

시종일관 균일하게 당혹감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남편과의 성관계 비디오가 세상 밖으로 노출돼 현실에서의 삶이 위태로워지는 에미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교의 교사이기도 한 그녀는 곧 학부모들의 심판대에 서야만 한다. 영화의 감독 라두 주데는 그동안 빈번하게 이루어진 영화적 맥락 형성하기를 과감히 무너뜨리고 현재 세계를 동시에 이 심판대에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시도는 쉽게 즐기기 힘든 코미디를 빚어낸다.


오프닝부터가 최고 수준의 선정성을 지니는 만큼 시작부터 평단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이 외설인지 예술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좀 더 시급한 사실은 뒤이어지는 교사 검증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그 장면을 보아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총 3부로 구성돼 있지만 스토리 위주의 서술을 과감히 끊어먹은 채 2부에서 필름 푸티지를 차용한다. 배경이 되는 루마니아 사회의 정세를 단어 위주로 재정의 하는 방식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설명해주듯 친절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현 정세를 넋 놓고 쳐다보는 현대인을 아기로 치환하는 시도의 일종이다. 이들은 1부에서 에미의 동선을 따라가는 카메라가 수시로 비춘 도시 풍경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동시에 관객은 이 현대인의 범위가 객석의 자신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영화는 이 영상물이 가공되었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팬데믹의 상징물인 마스크를 작품 속에 그대로 집어넣는다든지, 지나가는 버스의 차창에 카메라와 스텝들이 고스란히 반사되는 식의 장면들은 단순한 실수로 전락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제공하는 우스꽝스러운 세상 속에 관객과 카메라가 모두 들어있다고 설득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 긍정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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