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모님께서 저녁 산책을 나가셔서 오랜만에 딸랭구랑 놀았다. 마누랭구가 레고를 사놓아서 같이 했다. 종알종알 대면서 뭔가 자꾸 만들었다. 옆에서 끼어들지 않고 추임새만 넣어줘도 잘 놀았다. 괜히 적극적으로 끼어들면 방해했다고 화낸다. 어디서 듣기로는 부모가 이거 하고 놀까? 하는 게 좋지 않다고 했다. 애기들은 항상 하고 싶은 게 있으니, 잘 안 되는 건 옆에서 적당히 도와주고, 크게 위험한 짓을 하지 않도록 해주면서, 반응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고 한다. 엄마나 아빠가 애기들에게 뭘 하자고 제안하면 부모가 애기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애기가 부모와 놀아주게 되기 때문이란다. 육아를 안 해본 사람은 거 되게 쉽네 싶을 텐데, 똑같은 짓거리를 한 시간 내내 반복해서 엄청나게 지쳐버리거나, 가르쳐주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게 꽤 많은데 참아야 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곤지암의 화담숲에는 기가 멕히게 잘 꾸며놓은 민물고기 어항들이 있다. 3년 전쯤 갔는데, 어떤 엄마가 어항들을 애기한테 보여주면서, 여기 다 봤지? 저기 또 이쁜 거 있으니까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재촉의 이유엔 관람객이 많다는 것도 있었겠지만, 애기에게 이쁜 걸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어항을 오래 보는 걸 지겨워하셨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원하는 관람 속도를 유지한다면 어항 10개 보는 데 한 시간씩 걸릴 수도 있겠더라. 부모에겐 인내와 노력이 무진장 필요하다. 애기는 이쁜 짓을 해서 부모의 인내를 충전해 주는데, 이쁜 짓을 잔뜩 당하려면 평소에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이와같은 선순환이 끊기면 육아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어젠 오랜만에 내가 재워준다고 둘이 들어갔는데 책 두 권 읽어줬더니 한 권 더 읽어달라, 물먹고 싶다 등등으로 바깥에 나가서 놀겠다는 마음이 듬뿍 담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책 읽어달라는 요구는 아기 사자가 콜로라도에서 온천가는 이야기해준다고 무마했는데 물먹고 싶다고 앵앵 울길래 내보내 줬더니 엄마를 납치해왔다. 평소였으면 실패를 인정하고 마누랭구에게 애를 맡긴 다음 유튜브 보러 갔을 텐데, 며칠 소홀했기 때문에 잠이라도 같이 안 자면 애정도가 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마누랭구랑 셋이 잤다. 딸랭구는 엄마에게 갖은 애교를 다 부렸다. 아빠는 정말 안중에도 없었지만 나가라고 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누워있다가 내가 제일 먼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