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줄박이물돼지 Sep 21. 2020

사씨임장기 #4

8월, 하오의 햇살 아래 무작정 동네 유람

사씨와 그의 부인은 수지구청 사거리를 넘어 백설교를 건너는 중이었다. 8월의 더위는 오리알을 삶을 정도로 뜨거워 사씨의 부인은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본 사씨가 목청을 돋우어 한 소절 뽑았다.


上陽强不極(상양강불극) : 머리 위 햇빛이 끝없이 강하니
乃在天中央(내재천중앙) : 바로 하늘 중앙에 솟아있구나.
橋邊無爽風(교변무상풍) : 다리 주변 시원한 바람 한점 없는데
遮身用無木(차신용무목) : 몸을 가려줄 나무도 없어라.
時無食水(시무식수) : 때마침 마실 물도 없어
索茶房彷徨(색다방방황) : 다방을 찾아 방황한다.
欲尋福德房(욕심복덕방) : 부동산을 찾고자 하였더니
怊悵日曜日(초창일요일) : 애달프게도 일요일이구나.

중차학기상인시권(重次學己上人詩卷)-유성룡(柳成龍)


돈도 시간도 없어 동네 임장도 일요일 땡볕을 무릅쓰고 가야 하는 처지에 개울을 보며 오활한 소리나 읊어 대는 사씨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당신은 학창 시절 중국어 '가'를 받아놓고 문자 쓰기는 참 좋아하시는군요."

"배움이 모자람보다는 배움이 그치는 것이 더 큰 허물일진대 군자를 자처하는 소생이 어찌 지난날에 연연하여 문자 읊기를 부끄러워하겠소?"

"말이나 못 하면 좀 덜 밉겠네요."

"그러지 말고 마음을 푸시오. 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진산 6단지요."


사씨 부부가 처음 임장 하기로 한 단지는 진산 5,6,7단지였다. 수지의 전통 명문 이현중을 끼고 있으며 삼성에서 건축하여 적지 않은 연식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고 하자가 없다는 평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5단지는 대단지로, 관리비도 저렴하고 단지 내 공동체도 활성화되어있어 아이를 키우기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6단지는 수지구청역에서 가장 가까우나 단지 분위기가 조용한 편이고 아이들이 많이 없구려."

"7단지는 고급 승용차가 많고 주차공간도 넉넉한데 막상 걸어보니 역에서 상당히 먼 느낌이네요. 역시 5단지가 아이를 키우긴 가장 좋아 보여요. 우리 예산에도 가장 맞구요."

"다음은 비교적 신축인 푸르지오 쪽으로 넘어갑시다. 혹시 우리 동네가 될지도 모르니 동네 다방에 들러 목을 축일 겸 분위기를 느껴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씨임장기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