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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Sep 25. 2020

사씨임장기 #8

말랑은행 주식 구매에 미친 자

"만현(晩峴)마을은 인근 야트막한 산의 긴 고갯길에서 유래한 지명이오. 느린 재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표현하면서 만현이 되었고, 그 이름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복 역세권 인근 부동산 시세가 분출(噴出) 하는 와중에도 가격 상승이 느지막한 동네요. 성복역과 곧 입점 예정인 노대몰(勞大沒)을 도보권으로 이용할 수 있음에도 40평대 아파트를 5억 이하에서 잡을 수 있소. 이현중 진학을 노려볼 수 있는 학군이며 원희성(城)이 지척이라 생활 편의도 보장되오. 주민들의 인심이 순하고 주차가 편하며 산을 끼고 있어 청정한 공기를 즐길 수 있는 동네로도 알려져 있소. 오늘 우리는 이곳을 둘러볼 것이오."


서쪽의 푸른마을 푸르지오를 포기한 사씨가 고른 곳은 동쪽의 만현마을이었다. 성복 노대몰(勞大沒) 개장이 지척에 다가와, 태영 데시앙이 6억 신고가를 쓰던 때였다. 사씨 부부는 동네 사람 전부와 인사를 하는 믿음직한 부동산 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만현마을을 임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본 집은 '만현마을과 샤넬의 방' 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는데 아이가 없는 것처럼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으며 샤넬 상자들이 보기 좋게 진열된 방이 있었다. 사씨의 부인도 샤넬을 사고 싶었으나 생활이 궁핍하여 군침만 꼴깍이고 있던 때였다.


"부인, 우리 주택 담보대출을 받으면 일부는 샤넬백 사는데 쓰십시다."

"저도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우리 형편에 너무 비싼 것이 아닙니까?"

"아니오. 근래 소생은 샤넬백에 필적하는 가격의 구구팔사(九九八社)*를 척척 사고 있소."

"않이? 이 양반이? 집 살 때까지 주식 안 사신다면서요?"

"손 회장님을 대머리 사기꾼으로 매도하는 무리들이 창궐하매, 소생의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 하지 않겠소? 소생은 손 회장님이 그리는 애이아이(愛理娥理, 사랑의 도리와 아름다움의 도리)의 미래를 믿고 있소. 허나, 부인이 샤넬백을 사신다면 구구팔사(九九八社)*구매는 크게 할인할 때까지 자제하도록 하겠소."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고려해볼게요."


다음으로 본 집은 '만현마을과 독서의 방'이었다. 거실의 세 면을 모두 책장으로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부엌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도 책장이 있는 집이었다. 거의 대부분 아이를 위한 장서였으며 사씨가 평생 읽은 책보다 많은 것 같았다. 사씨 역시 선비를 자처하는 자로서 그만 흐뭇해져 버렸다.


"이 수지 지역이 아이 교육의 명소라더니 과연 남다른 구석이 있구려."

"우리 집 한켠에 초라하게 자리한 아이 책장에 부끄럼이 드는군요."

"집이 군색해서 그런 게 아니겠소? 우리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제대로 된 아이 책장을 구비할 수 있을 것이오. 이렇게나마 다른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크게 안계를 넓히는 것 같소. 이왕 보는 김에 67평 집도 한 번 보는 게 어떠하오?"


사씨 부부가 마지막으로 본 집은 67평의 빈 집이었다. 같은 단지 40평과 비교하여 가격이 3천만원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사씨는 67평의 어마어마한 넓이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부인. 이 집이오. 이 집으로 합시다."

"이렇게 넓은 집을 어찌 청소하고 사신단 말입니까?"

"집이 이리 넓은데, 어찌 물건 치울 곳이 없다 걱정한단 말이오? 구석에 다 밀어두면 될 것이오."


사씨 부인은 험한 말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부드러운 말로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사씨가 가로되,


"아, 원통하도다. 장부가 집을 넓히고자 하매 애써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집을 찾아야 한다니. 손 회장님의 애이아이(愛理娥理)혁명만 완수되었어도 청소 따위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사씨는 그날 귀가하면서 지하철역 하나를 지날 때마다 비통에 찬 애이아이 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씨 부인은 저만치 떨어져 앉았다.





※구구팔사(九九八社)*: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된 Softbank Group 주식, Ticker로 TYO: 9984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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