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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Sep 26. 2020

사씨임장기 #9 - 完

빌리고 또 빌리면 집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만현마을 좋은 것은 알겠으나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아요."


사씨 부부는 그 이후로 만현마을에 두 번 더 다녀갔다. 한 번은 기대가 자자하던 성복 노대몰(勞大沒)이 열리는 날이었다. 거대한 데다가 일하는 이들도 매우 바빠서 과연 일이 크다는 노대(勞大)의 명성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근자에 방문하여 부부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가히 시장 중 으뜸이라는(市場之首)명성이 타당하다 할 만한 고양 수타필두(首妥必頭)에는 미치지 못했다. 노대는 아무리 커봐야 결국 노대였다.


그때 사씨 부인에게 시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새 아가. 내 어제 꿈에서 대단지교(大團地敎)의 신탁을 받았다. 서쪽에 있는 동쪽의 개울에 네가 원하는 집이 있을 것이야."

"서쪽에 있는 동쪽의 개울이 무슨 말씀이세요?"

"내 가가오(家家悟) 지도를 보니 경부고속도로 서쪽에 있는 동천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구나. 거기서 대단지 아파트를 찾아서 부동산에 전화해 보거라. 내일 얼른 임장을 가보자꾸나."


동천(東川). 학군으로 유명한 수지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학구열이 다소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천동 중심에 위치한 손곡 중학교는 수지의 4대 명문중학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며 학원가가 밀집되어 있는 수지구청 인근과는 다르게 아파트 위주의 조용한 동네다. 동천역 옆으로는 넓은 물류 단지가 있어 잠재적 개발호재를 품고 있다고들 하지만, 언제 될지는 모른다. 경부 고속도로를 넘어 동쪽으로 가는 길이 복잡하여 거리에 비해 이동 시간도 제법 당비 되었다. 그러나 지하철 한 정거장 만에 분당에 닿고, 세 정거장을 가면 판교에 닿으며, 20분을 가면 강남에 닿는 지리적 이점을 가졌다. 노대몰의 개장 및 금노대성(金勞大城)의 입주로 본격적으로 시세를 분출한 성복역 인근에 비해 가격적으로도 이점이 있었다.


"어머니가 내일 당장 동천에 가보자고 하시네요."

"조금 곤란하시겠소. 하지만, 성격이 급하신 분이니 한 번쯤은 어울려 드려야 할듯하오."

"연륜 있으신 어머니와 함께 하는 게 한 편으로는 든든해요. 당신은 희한한 고집을 많이 부리니까요."


사씨의 부인은 시어머니와 동천으로 임장 갔다. 사씨의 어머니는 거침이 없었고 많은 집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많은 집을 돌다 보면 내 집이다 싶은 집이 나온다는 선인들의 격언이 정말이었는지, 사씨 부인은 동천동에 푹 빠져버렸다.


"제가 제일 마음에 든 집은 5억 8천이랍니다."

"5억 8천은 너무 비싼 감이 있소."

"푸른 마을 푸르지오는 6억 9천에도 사자고 하시던 양반이 왜 그러시죠?"

"그곳은 43평이고, 그때는 노대몰이 수타필두에 비견할 만할 줄 알았소."



사씨 부인이 목청을 뽑아 낭랑한 목소리로 시조를 하나 읊었다.

집값이 높다 하되 경기도의 집이로다
빌리고 또 빌리면 못 살 것도 없건마는
사람이 돈 아니 빌리고 집 비싸다 하더라

태산가 - 양사언(楊士彦)


사씨가 답하여 가로되,

저금리 기조로 풀려 있는 저 돈들을
주택 담보로 한 움큼 가져다가
사천(四千)아래 구구팔사(九九八社)*에 뿌려본들 어떠리

철령 높은 봉에 - 이항복


부동산은 여자 말을 듣는 것이 마땅하나 손 회장님도 예사 인물은 아니니 대강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바이니 보시는 사람들은 참고하소서. 희로애락을 지성으로 근고(謹告) 하옵니다.


사씨임장기 끝.




※구구팔사(九九八社)*: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된 Softbank Group 주식, Ticker로 TYO: 9984를 쓴다. 글을 쓰던 당시 주가가 4000엔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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