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시대 9

용궁에서 온 그 남자

by Hu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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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라, 그놈덜이 무신 못할 짓을 했다꼬 그래 욕을 해쌌노?”하고 이번에는 양복쟁이가 사내를 나무라듯 제지했다. 그러나 사내는 막무가내로 따지고 들었다.

“방금 보지 않았소. 날 죽이려는 걸 말이요. 어, 이거는 암살음모야.”

이 말에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던 물개수염의 중늙은이가 대뜸 퉁을 먹였다.

“암살은 무신! 엥간히 처 묵었으야지. 주딩이에 번질번질 기름 발라가믄서 뼈다구 까정 씹어묵으니 워째 목구녕에 걸리지 않겄어, 안 그려?”

“모르는 소리요. 내가 용궁의 구시대적 그릇된 기풍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깨끗하고 서로 믿는 정의로운 새 사회와 부강한 용궁을 건설하려니깐…….”

사내의 목소리는 사뭇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반동세력들이 암살을 자행하고 분열을 책동하고 있는 거요.”

하지만 물개수염의 중늙은이는 그의 기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이구 말루다야 다 존경하구 친애하는 궁민 여러분이지. 다 개수작인겨. 궁민을 위해 정의로운 세상을 맹근다구 맨날 존경허는 국민들헌티 세금이니 뭐니 하믄서 삥이나 뜯어낼라구 조지구 쑤시구 지랄아니유. 그란디 무신 개뿔같은 정의여, 옘병.”

“미개한 야만종 같으니,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정의 운운하진 마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물개수염의 중늙은이는 계속 이기죽거리며 사내의 화를 돋우었다.

“얼러려? 내가 벙어리여? 주둥이 멀쩡헌 사람이 어떻게 헐 말두 안 허구 산댜?”

사내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얼굴을 내리칠 것처럼 중늙은이에게 다가들며 으르렁거렸다.

“당장 염라국으로 보내드릴까? 그럼, 고놈의 천박한 주둥일 못 놀릴 테지.”

사내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물개수염의 중늙은이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언제 붙들 새도 없이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발랑 나자빠졌다.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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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구마, 고만 앉그라. 저 영감탱이가 미친 강아지맹키로 뭐라꼬 씨부리 싸튼지 가네 그냥 마 신경 끄고……. 술 한 잔 묵으믄서 내하고 이야기 쪼매 더 하는기 어떠노?”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양복쟁이가 사내의 손을 붙안아 자리에 끌어 앉혔다.

“이바라, 거서 뭐하노? 퍼뜩 술 한 자배기 더 내오그라.”

“글안해도 술상 놔 놓고 지달렸제.”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노파가 술상을 새로 내왔다.

소주에 안주로는 시래기를 듬뿍 얹은 북어찜이었다.

“꼬들꼬들 마른 놈으로 북어찜도 맹글어 왔응께 드시요. 술안주로 묵으먼 쓴 쐬주가 겁나게 달아 분당께. 이 맛도 모르먼 어디가서 술 묵을 줄 안단 말은 혓바닥에 대도 못 할 거시요.”

주인 노파는 넉살좋게 얼른 양복쟁이와 사내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는 때가 닥작닥작한 손으로 접시에 담긴 시래기뭉치를 헤적여 굵은 북어대가리 하나를 쑥 뽑아 사내에게 건넸다.

“아제, 그러고 있지 말고 머리빡 잔 자셔 봐. 동지섣달 긴긴 밤에 국밥 끓여 묵을 적에 그냥 내버리기는 아까운께 따로 챙기논 놈들인디. 그려도 간장에다 쌩고추허고 마늘허고 깨 옇코 참지름에 고치가리로 무친 머리빡을 짐이 폭폭 들게 쪄 가꼬 쪽쪽 뽈아 묵으먼 기가 맥힌께 어두진미라고 욕심내는 놈들도 많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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