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프로덕션: 찐막
* 어느 날의 일기
2024년 6월,
<좋아하는 색깔> 최종 마스터링 편집본을 배급용 자료들과 함께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씀
머리에 쥐가 나고 속이 뒤집어지는 촬영이 끝나고서는 ‘이제 정말 끝이다’ 했다. 편집에 믹싱에 출력에 수십번의 언덕을 넘고서 상영회를 올렸을 때 이제는 정말 정말 끝이다 했다. 출력본을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던 늦은 밤, 버스의 질주와 기분 좋게 뺨 위를 타고 흐르던 바람, 터져버릴듯 차오르던 함박 미소를 잊을 수 없다.
1년 간 영화제들을 알아보고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서류 작업, 포스터, 믹싱 수정, 색보정, 크레딧 작업을 했다. 근데 마음처럼 진도가 안 나갔다. 대학원 준비 등 맞닥뜨린 진로 문제도 심각해서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끝이 나지를 않았다. 미완의 숙제로 남아버린 영화에서는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났다. 이따금 그 냄새들이 코 끝을 짓누를 때 나는 그 숙제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숙원 사업이었던 색보정을 드디어 끝냈다. 2023년 한 해 동안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작업을 드디어 마치고 나니 너무 후련하고 얼떨떨하다. 속도를 내서 진작에 해치울걸 하는 마음도 함께다. 근데 이쯤 와서까지 나를 책망하고 싶진 않고, 그동안 속 끓이고 스트레스 받았던 시간들이 떠올라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진짜 별 것 아니지 않나 싶지만, 편집 최대한 안 건드리고 믹싱이랑 색보정만 건드렸는데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작업자 섭외하고 오더주고 확인하는 그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부정적 의미로든 긍정적 의미로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다시금 뼈에 새기는 계기였다.
‘통제감을 내려놓자.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는 거 없으니까.’
이건 영화를 찍으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후반 제작 작업에서도 계속 느낀다. 색보정 감독님을 잘 만나서 편집 중 발생했던 잔실수도 메꾸고 배급 준비도 마치고, 스트레스의 절반은 줄었던 것 같다. 색보정 감독님과 컨택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만난 여러 감독님들 못지 않은 귀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많이 느꼈는데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도 새삼 너무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 땅에 헤딩했던 크레딧 작업도 힘들지만 재밌었다. 별 것 아닌 작업이라도, 뭐하나 추가하면 일이 엄청 늘어나는 것 같다. 스태프들이 좋아하는 제각기의 색깔을 반영해 크레딧을 만드는 작업이 그랬다. 그래도 너무 만족한다. 크레딧이라도 정성껏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는 보람이 영화 작업에 남는 여러 아쉬움을 달래준다.
작년 9월쯤이었나? 내손퀴에서 같은 팀으로 인연을 맺은 분과 감자탕을 먹으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논문을 쓰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자 그 분도 공감하며 직장 일도 마찬가지라는 말을 해주셨다. 어떤 업무를 진행할 때도 다 비슷한 패턴과 메커니즘을 가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실행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어디서든 반복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더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모했지만 무용하지 않았던 경험이라는 안도감, 몸소 삶에 뛰어들어 부딪쳐봤던 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피어올랐다. 내가 살아갈 삶의 여정 그 어디서든 그 언제든 영화를 만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색보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했던 목표점은 두 가지였다. 얼른 배급 자료를 넘기는 것과 한국퀴어영화제에 출품하는 것, 스크리너 링크를 만들기 위해 비메오 플랜을 갱신하고 업로드 하기 등 진짜 별 사소한 것이 다 귀찮고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무사히 출품했고 숙원 사업을 이뤘다. 실제로 영화제에 걸리기까지 하면 너무너무 좋겠지만, 그 목표를 향해 달려오며 매듭지은 일들만으로 너무 만족한다. 순수한 패기 뿐인 영화지만 그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가닿길 바라며, 내 새끼같은 영화 <좋아하는 색깔>을 드디어 매듭을 지어 훨훨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