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 제작기 (11)

포스트 프로덕션: 서울은평청년영화제(SESFF)

by 백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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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가 끝난 후 1년 간은 각종 영화제에 출품을 해보는 기간이었다. 보통 영화제에서는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최근 1~2년 사이 제작된 영화를 출품 대상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영화가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시기에 바로 1년 간 주요 영화제를 한 바퀴 쭉 돌아보는 게 단편 영화 제작 이후의 수순이었다.


영화제를 그동한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었던 나는, 2022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를 경험 차 방문했다. 영화제는 생각보다 재밌는 포인트가 많았다. 단편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우선 가장 매력적이었고 그 단편 영화들이 옴니버스로 묶였을 때 내는 시너지들도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보니, 단편 영화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연출자의 관점, 제작자의 관점 등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 점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퀴어 영화의 본 고장 같은 이 영화제에 내 작품도 내년에 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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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그 시기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느 영화제에 출품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부터, 지원기간을 서칭해서 기간과 절차에 맞게 작품을 제출하는 것까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수십 개의 영화제에 출품해볼 만큼 해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고 의기소침해 있던 무렵, 좋은 소식이 들려 왔다. '서울은평청년영화제(SESFF)'에 내 작품이 상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영화제에 걸릴 수 있어 너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영화제에 대한 욕심은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는 아예 없었다. 그때는 그냥 영화를 완성해서 얼른 이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그런데 돈과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을수록 보상심리가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기왕 이만큼 쏟아부은 김에, 조금 더, 조금만 더 돈이든 에너지든 투자해서 영화를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집착이 커졌다. 그렇지만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의 성과는 전무했고 내 영화의 가치를 스스로도 폄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행복, 벅찼던 감동과 의미있던 추억들마저 퇴색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즈음, 서울은평청년영화제에서 상영작 선정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영화제 상영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여러 자료들 중 트레일러가 있었는데, 그동안 영화제 출품에서 낙방해 아쉬웠던 마음만큼 트레일러에 온 정성을 다 쏟았다. 초보 편집 스킬로 한 땀 한 땀 장면을 오리고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트레일러를 완성하고 혼자 흡족해 했던 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나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영화제에서의 성과가 아니라, 이런 조그마한 성취의 순간들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영화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나의 영화는 여러 부분들에서 무모하고 부족했다. 영화제는 여기까지 온 이상 무언가 가시적인 성취라도 남길 바라는 마음,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나는 그 욕심에 휘둘려 동민이가 방에 홀로 갇혀있던 모습으로 회귀해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색깔>을 통해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새로운 일들을 이겨내며 성장했다. 그것이면 충분한 일이다. 애초에 나는 나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는 것이 내 영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들의 평가에 주눅들지 않고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에 귀기울이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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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 이후 영화제에 출품하면서 틈틈이 진행하고 있던 남은 영화 작업들을 모두 마무리해서 서울은평청년영화제에 상영하고 싶었으나, 이를 전부 완성하지는 못했다. 내손퀴 상영회와 동일한 편집본에서 추가 OST 삽입만 이뤄진 채 영화제에 작품이 상영됐다. 색보정과 사운드 믹싱이 최종 마스터링된 시점은 1년 정도가 지난 후인 2024년 봄~여름 쯤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영화를 챙길 여유가 상대적으로 너무 부족해진 탓이 컸다.


<좋아하는 색깔>은 ‘사랑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섹션에서 사랑을 주제로한 다른 선정작들과 상영이 됐다. 공교롭게도 나는 대학원 일정으로 서울은평청년영화제 참여가 불가능했다.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다니, 사무치게 뼈아팠다. 아쉬움도 잠시, GV 참석이 가능한 대행 참석자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동민 역할의 배우님이 참석 가능하셔서 한시름 놓고 운명을 받아들였다. 배우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을 때, 배우님은 걱정 말라고 하시며 '우리는 한 팀'이라고 얘기해주셨다. 배우님의 밝은 에너지에 기운이 났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영화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나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GV 대행 참석도 그렇고, 내가 서울은평청년영화제 개막식에 지각하는 바람에 ‘샐러드데이즈상’ 수상의 순간을 놓칠뻔한 아찔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마침 조연출 친구가 현장에 참석해 있던 상황이라 대리 수상을 해주는 고맙고도 웃픈 해프닝이 있었다. 게다가 영화제 운영진으로 우연히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이 그 해프닝을 잘 중재해준 덕에 상황이 잘 정리됐다는 놀라운 후일담까지 남았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를 빗겨가고 놀래키기도 하는 영화제와의 인연이었지만, 괜찮다. 서툴렀고 모자랐던 그 과정 속 내 모습 그대로가 좋고 재밌는 기억으로 남았다.


학보사 시절 취재했던 달항아리 하나가 떠오른다. 전통 도자기를 만드는 신경균 작가님을 만나 전시회와 관련하여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의 일이었다. 여러 도자기 중 내 시선을 잡아 끈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의 하단에 자리한 태그에는 '응시'라는 작품명이 담겨있었다. '응시'는 깨지고 뒤틀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가마 천장에서 떨어진 흙자국도 얼룩으로 그대로 남아있었다. 손상된 도자기는 보통 버려지기 마련이지만, 신경균 작가님은 달항아리의 제작 과정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전시했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깨진 달항아리가 ‘응시’라는 이름을 얻고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 채 전시되듯이 나의 영화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있는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영화로 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에세이로 내 영화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다. 이 글은 어쩌면 나의 구차한 실패담이자, 스스로에게 바치는 사소한 참회록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찌질함과 흔들림마저 나의 일부이기에 후회는 없다. 나를 똑닮은, 어딘가 서툰 그 모든 흔적들이 정겹다. 동민이가 하늘색의 경계를 허물고 그냥 자신의 하늘색을 캔버스에 마음대로 쏟아내며 짓던 웃음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동민 미소_서울은평청년영화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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