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 제작기 (13)

포스트 프로덕션: 요란한 엔딩 크레딧

by 백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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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요란한 커밍아웃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색깔>이라는 영화를 통해 여기저기 커밍아웃을 했다. 상영회를 찾아와준 친구들에게도 이래저래 내가 성소수자임을 공개하게 됐고, 영화를 만들며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했다. 4년 전엔 학보사 칼럼으로, 3년 전엔 퀴어단편영화 제작으로, 나는 참 요란한 방식을 통해 커밍아웃을 해오고 있다. 칼럼도 칼럼이지만, 이제 <좋아하는 색깔>은 나의 커밍아웃 명찰 같은 영화가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색깔>과 관련한 인터뷰 게시물에 내가 성소수자임이 공개된 글이 남아있기도 하고, 이 에세이를 남김으로써 더 확실해졌다. 이 지점에 대한 고민으로 나는 오랜 기간 에세이를 쓸지 말지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 끝에 이 에세이를 남기기로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경준이가 하늘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


“동민아, 지금 이 하늘의 모양과 색깔은 지금 이 순간, 딱 한 번 뿐이다?”


“오직 이 순간, 단 한 번, 그래서 맞나 틀리나 생각할 틈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그 순간을 찍어야 해. 멋있지!”


“그래서 난 하늘 사진 찍는 게 좋아.”


내가 어떤 진로를 택하게 될 지 모르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훗날 단편 영화 <좋아하는 색깔>과 후일담으로 쓰여진 이 제작기 에세이는 나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글이 너무 쓰고 싶었고, 글을 쓰는 순간 행복했다. 경준이가 이런 나를 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리저리 조각나있던 내 삶은 이런 요란한 커밍아웃으로 한바탕 살풀이 하고 나면 조금씩 짜맞춰져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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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답게 영화 크레딧도 참 요란했다. 스태프들이 제각기 좋아하는 색깔로 한 줄, 한 줄을 물들인 크레딧을 만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어설픈 편집 실력으로 더듬더듬 크레딧을 만들 때는 후회도 했지만, 기어이 완성한 요란한 엔딩 크레딧을 보며 나는 웃는다. 영화를 만들던 순간들, 그때 간직했던 마음들, 그 무수한 추억에 잠겨 즐거운 웃음도 머금었다가, 씁쓸히 고개도 떨구다가 함께 흘러나오는 OST에 동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이 정도 의미면 더할 나위 없지 않나 싶다. 영화를 만드는 2년 여 기간 동안 너무 고생 많았고, 잘 버텨준 스스로에게 고맙다. 재밌고 행복한 추억을 참 많이 만들었다.


이런 값진 추억들을 떠올리다보면, 성소수자라서 할 수 있었던 경험이지 않나 이따금 생각한다. 단편 퀴어 영화 제작을 빌미로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친구들, 그렇게 모인 마음들, 명절같이 따뜻하게 복작이던 그 풍경은 퀴어여서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내가 가진 약점은 누군가의 또 다른 약점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불어 넣어주기도 한다. 동민이를 통해 전색맹의 이야기를 하면서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양갈래 길에 매달리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이것을 내려놓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정답과 오답이라는 양갈래 길에서 꼭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완전한 정답, 완전한 오답은 애초에 없다. 그래서 불완전해도 괜찮다. 불완전한 존재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동민이의 하늘색을 나는 사랑한다.


색깔의 실체에 정답은 없다. 어떤 색이라도 하늘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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