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 제작기 (14)

닫으며: 너에게 가는 길

by 백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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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커밍아웃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의 커밍아웃은 첫 애인과의 이별로 인한 후폭풍을 계기로 물꼬를 텄다. 첫 커밍아웃 대상은 나의 동생이었으며, 그 다음은 가까운 대학 동기였고, 그 다음은 엄마였다. 만취한 후 힘든 마음에 우발적으로 엄마에게 이야기가 나와버린 것이다. 엄마에게만큼은 커밍아웃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됐었는데,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에 후회를 했다.


우리 엄마, 내가 술마시고 무참히 뱉은 커밍아웃으로 부터 6년이 흘러가는 동안 혼자 감당해야했던 혼란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잔인하게도 난 그 무게를 알지 못한다. 나는 자식이 없기에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감히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나를 바라볼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잘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하루아침에 수용해야한다는 일방적인 미션은 얼마나 숨이 막힐까. 얼마나 많은 기대와 소망을 내려놓게 하는 것일까. 내 아이가 누리길 바랐던 안정, 행복, 가정, 부모로서의 기쁨,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통보는 엄마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선고였겠지.


당사자에게 커밍아웃은 자신의 욕구를 향하는 길이다. 구비구비 고민하고 결정하며 받아 들여온 시간이 역사처럼 자연스럽게 새겨진다. 하지만 부모와 가족은 다르다. 커밍아웃이라는 순간을 통해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분리되는 경험을 한다. 그동안 알아온 ‘너'는 낯선 존재가 된다. 그 혼란감을 퀴어 당사자들은 충분히 존중할 필요가 있다. 설사 그 혼란이 완전한 수용으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트로피로서의 자식을 기대하는 부모가 정상성의 틀에 어긋난 자식을 탓하고 찍어누르는 행위, 전혀 감정이 관여되지 않은 무미건조한 차원의 처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가족이라면 애초에 그들로부터의 수용의 유무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가족은 소수자로 살아갈 퀴어 당사자의 미래에 그 누구보다 깊이 관여돼 있는 사람들이다. 자식이 아픈만큼 부모도 아프다. 어쩌면 더 아플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내 자식이 아프다며 가슴을 치는 게 부모다. 그들에게 자식의 일은 남의 일이 될 수 없고, 그래서 더더욱 아무 생각 없이 수용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하트를 누를 수 없는 것이다. SNS 게시물 중 하나를 보듯이 하트를 누르고 넘겨버릴 수 없는, 아주 깊고 지독하게 얽힌 자기 자신의 일이 되는 것이다.


‘날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엄마랑 계속 보고 말하고 관계하면서 지낼거야.’


가족들이 나를 걱정하고 미워하는 마음, 맨 앞에 드러나는 가족들의 행동과 말을 넘어서 그 이면을 볼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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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데리고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길>을 보러간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이해해보려고 노력할게 그렇지만 돌아올거라는 마음도 접지 않고 있을게.”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해 못해도 돼. 내가 엄마 이해 할게. 난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좋겠어서, 이거 보여주고 싶었어”


엄마랑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수없이 했다. 나 행복할게, 나 단단해질게, 나 상처 받지 않을게.


나의 다음 작품이 있다면, 내 안에 갇힌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내 바깥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를 들면, 커밍아웃을 받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커밍아웃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커밍아웃을 해야하는 순간들을 또 만나게 되지 않나. 그런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싶다. 나의 다음 이야기는 분명히 나를 벗어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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