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사고, 정을 나누고, 시장을 경험하는 방법
예측하건대 정을 상상하고 무턱대고 시장에 가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북적이는 시장 속에서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넘치는 인심으로 ‘덤’을 팍팍 넣어주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말이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상인들은 생각보다 아무에게나 호락호락하게 정을 나눠주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정을 베푸는 건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고 그걸 매일같이 해낼 사람은 잘 없다. 그럼에도 반이나 맞다고 한 이유는 찾아보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나, 언론에서나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이미지 메이킹 한 것이 아니라 요즘에도 분명 존재하는 모습이다.
어딜가든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 어딜 가든 질문이 많았는데 돌아보니 죄다 사람이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가게를 운영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어떻게 시장에 오게 되었는지,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질문을 너무 많은 손님을 만났을 때 상인의 반응은 ‘할 말이 너무 많아 유형’과 ‘할 말이 너무 없어 유형’으로 나뉜다. 전자를 만나면 내가 이만 가려고 시늉해도 할 말을 줄줄 이어 나가는 반편에 후자는 자꾸 질문을 던져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어쩐지 더 귀찮게 하고 싶은 쪽은 애석하게도 후자다.
무뚝뚝한 인터뷰이를 만나면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넨다. 생각보다 “안녕하세요” 한 마디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인사의 쓸모 있음에 대하여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결국 최대 수혜자는 인사를 건넨 사람이 될 것이다. 인사만 잘해도 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반은 마음을 여는 데 써야 한다. “사장님 여기 1인분 하나요” 재빨리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우선 돈을 써야 마음의 문도 열린다.
시장하면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북적이는 기운. 가족인지 동료인지 구별 안 되는 상인들끼리의 친밀감. 옆집에서 수십 년을 넘게 같이 희로애락을 느꼈는데 가족인지 친구인지 일만 하는 사이인지가 뭐가 중요할까.
새해를 맞아 시장에 갔다. 연초나 명절이 되면 시장에 간다. 장을 보러 간다는 명분도 있지만, 앞서 말한 소박하면서 북적이는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다. 여행자의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전통시장의 여유와 정겨움이 소비자에게 주는 매력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바쁜 생활 속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요즘 재래시장이 주는 느림의 여유는 옛말이 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알다시피 전통시장의 위기는 시대 흐름에 따라 대형마트가 등장하고 온라인 시장으로 확장되면서 시작됐다. 대형마트의 일목요연한 정리와 신속함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전통시장의 여유와 정겨움이 주는 매력은 도무지 따라가지 않는다.
시장은 우리가 아는 세계를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말해준다. 시장은 지역공동체 문화가 싹트는 곳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나눈 대화는 그들의 삶 속에서 확장되고 퍼져나간다. 그래서 시장 없는 동네는 삭막하다. 시장 상인은 물건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는 진정한 투사들이기에 먼저 인사를 건네본다. “안녕하세요!”
글. 로잇스페이스
사진. 이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