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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마이크 May 08. 2023

전통시장 에디터의 시장 취재기 (2)

-오전 9:00


“혹시 아침 식사 되나요?”

“탕수육은 아직 안 돼요.”

다행입니다, 저희도 아침부터 기름진 탕수육을 먹기는 조금 어렵거든요…. 


우리가 아침을 먹기 위해 도착한 곳은 익산 중앙시장 맛집으로 소문난 대일 분식이다. 여기 메뉴는 탕수육, 라면, 떡라면, 만두라면, 떡만두라면, 치즈라면, 떡만두치즈라면, 계란치즈만두라면, 만두짬뽕라면, 바지락짬뽕라면, 김치떡만두라면 등이 있다. 심지어 ‘트리플’이라는 메뉴도 존재했는데, 이는 메뉴판에는 없는 다른 조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떡치즈김치라면이라거나, 바지락김치만두라면이라거나. 부재료로 만들 수 있는 라면의 많은 경우의 수를 ‘트리플’로 정리해버리는 깔끔함과, 재료만 있다면 어떤 조합이든 가능하다는 ‘트리플’의 여유로움을 보이는 분식집이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여기는 탕수육과 라면만 판다.


우리는 만두치즈라면을 주문했다. 누가 끓여주는 라면은 오랜만이다. 집에서는 딱히 먹을 게 없을 때나 찾는 게 라면인데, 밖에서 먹는 라면은 왠지 훨씬 맛있고, 하나의 요리 같고 그렇다.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벌써 두 군데 인터뷰를 마친 우리 둘은 후루룩후루룩 금방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탕수육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치익 치익, 맛있겠다.

“혹시 이제 탕수육 되나요?”

“아직 안 돼요.”

화창한 아침부터 탕수육에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

/


-오전 9:30


밥을 잘 챙겨 먹고 중앙 통로에 다시 들어섰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쪽을 자리하던 트럭은 다 가버렸고,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손님들이 꽤 보인다. 밥 먹기 전까지만 해도 닫혀있던 생필품 가게와 옷 가게도 한둘씩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뭐 하러 온 사람들이냐’고 말을 걸었다.


“전통시장 잡지 만들고 있어요. 오늘은 취재하러 왔고요.”

“잉, 그렇구먼. 젊은 아가씨들이 좋은 일 하네. 시장 홍보 좀 많이 해줘. 나는 여기, 영재야채상회 사장이여.”

“여기 사장님이세요? 안에 구경해도 되나요?”

“뭣이 볼 것도 없어.”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백발의 할머니가 야채를 다듬고 계신다. 사장님의 어머니라고 했다. 파 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바깥에서 사장님이 잠깐 나와보라고 부르신다. 보랏빛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안경알에 꽃이 새겨진 안경테를 쓰고, 노란 카라 티셔츠와 주황 폴리에스테르 조끼를 레이어드한 60세 정도의 여성과 사장님이 실랑이 중이다.


“여기 아가씨들이 시장 취재를 왔다는 거여! 어여 너네 집도 찍어달라고 햐!”

“우리 집에 찍을 게 뭐가 있어, 아이고 난 사진 찍히기도 싫어~”

“찍을 게 왜 없어, 나도 찍었는디. 아가씨덜, 여기 사장님 쫓아가 봐. 반찬 맛있게 잘 혀.” 우리는 냉큼 반찬 가게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전통 시장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사장님 가게는 어디세요?”

“우리 집은 저 아래쪽이여. 좀 내려가야 해. 거참, 뭐를 찍는다고 그런댜.”


반찬 가게 사장님은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문을 열고, 바로 초록 앞치마를 둘렀다. 사장님 패션이 예사롭지 않다는 우리의 말에 ‘그냥 이쁘니께 산 거지, 뭔 패션이여’ 라고 무심하게 대답하면서도 ‘아가씨들이 보기에도 이 안경이 나랑 어울리느냐’ 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보랏빛 그라데이션 안경에 관해 설명을 이어 나가다가, 이제 반찬 만들어야 한다며 얼른 다른 데로 가보라고 했다.


/



-오전 11:00


점심에는 오일장인 익산 북부시장으로 갔다. 택시를 타기 위해 중앙시장 밖으로 나섰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오일장에 사람이 있을까, 다들 이미 접은 거 아닐까, 걱정하며 택시를 탔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걱정과는 다르게 사람이 정말 많았다. 비가 오는데도 이 정도 인파가 오일장에 북적북적한다는 게 일단 흥미로웠다. 재밌는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와. 기운이 내려온다.


북부시장의 오일장은 야외시장으로, 상인들의 파라솔이 길 양쪽으로 들어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동그라미의 치명적 약점을 알지 않는가. 동그라미는 서로 아무리 잘 붙어있어도 빈틈없이 딱 맞을 수 없다는 것을. 제아무리 비를 맞지 않으려고 발재간을 부려도 동그란 파라솔 사이사이 빈틈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파라솔 안을 지나는 것이니 우산을 쓸 수도 없고, 사람은 많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나의 소중한 카메라가 촉촉해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메모리 카드도 촉촉해질까 봐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는 얼른 한 가게를 찾아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한쪽 귀퉁이에 파라솔을 두 개나 세워둔 밤 가게로 갔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은 우리 집 밤만큼 맛있는 곳이 없다며, 인터넷에서도 부리나케 팔린다고 말했다.

“일반 밤과는 종이 다른 건가요?” 하고 물었는데,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거까진 모르겠어요. 원래 언니가 파는 건데, 오늘 인터넷 주문 포장해야 한대서 제가 대신 왔어요. 그래서 뭔 종인지 그런 건 모르지만 진짜 맛있는 건 알아요. 명함 보고 인터넷 검색해봐요. 바로 나올걸. 유명해.”

“그러시군요, 종종 대신 오시나요?”

“언니가 바쁘다고 하면 대신 와요. 자주는 아니고.”

“대신 오신 날 하필 비가 많이 오네요.”

“비가 와도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나는 얼른 이거 다 팔고 가고 싶어.”

“이거 다 팔면 퇴근이시군요.”

“다 팔면 가야죠. 시간 되면 가거나. 아가씨들도 한 봉지 사.” 시장 사람들은 꽤 장사를 잘한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한 봉지 팔았다.


밤 한 봉지를 들고, 안락한 파라솔을 빠져나와 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었다. 몇 발짝 지나니 코너에 수산물 가게가 보인다. 총 여섯 명이 있었고, 아빠와 딸로 보이는 둘은 “꽃게, 꽃게 있어요!” 하고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꽃!게!” 명랑하게 꽂히는 목소리로 생선의 이름을 말하는 딸은 중간중간 손뼉도 치며 사람들을 모았고, 금색 목걸이를 한 아빠는 추임새를 넣어줌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생선을 싸주고 있었다. 코너 자리와 목청 좋은 부녀 덕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렸고, 검은 생선 봉지와 초록 지폐가 교환되는 모습을 짧은 컷으로 많이 볼 수 있었다.


넋을 놓고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용기 내 말을 걸었다.

“혹시, 내일은 어디 장으로 가세요?”

“예산 갑니다. 여기요, 꽃!게! 만 원!”

짧은 찰나를 답변에 할애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오일장은 참 바쁘구나. 이분들과 대화해보고 싶었지만 바쁜 모습에 제안도 해보지 못했다.



-오후 1:00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났다. 북부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삼삼오오 모여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분홍색 장미가 그려진 쟁반 위에 놓인 흰 밥, 국 한 그릇, 조금씩 놓인 반찬 접시. 다른 쪽에선 보온병에 싸 온 국과 어디선가 포장해온 김밥, 그리고 김치가 있었다. 다른 밥을 먹고 있었지만, 혹여 손님이 와서 말을 걸까, 편히 한술 뜨지 못하는 모습은 같았다.


한쪽에는 아주머니 네 분이 청국장 콩을 둘러싸고 앉아 계셨다. 왜 여기 다 둘러앉아 계시냐고, 이 청국장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한 아주머니께서 “여기 청국장이 진짜 맛있어. 이 아줌마가 청국장을 잘 쒀.”라고 하셨다. ‘이 아줌마’라고 지칭된 청국장집 사장님께서는 하하, 웃어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아주머니들 사이에 끼어 질퍽하게 다져지는 콩을 바라봤다.


“근디, 여기 이 아줌마도 사장이여. 고춧집이거든? 여기도 가봐요. 뭣 허는 거랑께, 얼른 보여주질 않고.” 우리는 쪼르르 고춧집 사장님을 따라 걸었다. 가게 이름은 시장고추상회였다.


“사장님 여기 문 열어두고 가셨네! 이렇게 열어두고 딴 데 계셔도 돼요? 누가 뭐 가져갈라.”

“안에 부처가 있는데 뭘 가져가.”

“부처님상 있어도 가져갈 사람은 가져갈 거 같은데요?”

“아니, 저기 우리 집 부처가 있잖어. 부처상이 아니라.”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양반다리로 TV를 보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우리 바깥양반이여. 근데 우리 집은 내가 바깥을 다니고 저 아저씨가 안에만 있어. 착햐, 아주 착햐.” 사장님은 재미있으신 듯 하하 웃으며 얘기하셨다. ‘바깥양반’ 아저씨께서는 그저 허허, 웃으셨고, 우리가 이것저것 보고 나갈 때까지 한 치의 자세 흐트러짐도 없이 정말 부처처럼 앉아계셨다…. 사장님은 “가게 잘 보고 있어, 이따 다시 올라니께.” 하고 어디론가 또 가버리셨다. 남게 된 ‘우리 집 부처’는 아무 말 없이 끄덕끄덕,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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