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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마이크 May 08. 2023

전통시장 에디터의 시장 취재기 (1)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의 기록

한 카페에서 여자 둘은 두 시간 동안 ‘시장’이라는 단어를 적어도 백 번 이상 언급했다. 말이 많이 오가는 것과는 다르게 진척은 잘되지 않는지 둘의 어깨는 내려갈 대로 내려갔고, 두 손은 착실하게 키보드에 얹혀있지만, 손가락은 그 노력을 무시한 채 꿈쩍 않고 있다. 젊은 여자 둘이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대화에서 ‘전통시장’이 키워드이며, 달콤한 얼그레이 초코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수심이 가득한 것인지 궁금해질 찰나, 한 여자가 책상을 치며 말한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야. 하루 종일 시장에서 나가지 말아봅시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시장 밖 사람이 아니라 시장 안 사람인 것처럼 하루를 지내보는 거죠.”

“괜찮죠? 규칙은 딱 하나예요. 하루 12시간 동안 시장 밖으로 나가지 않기.”

“언제 할까요?”

“내일?”


검은 머리의 여자는 바로 첫 차를 검색해보고, 시장 입구에 6시 50분쯤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의 그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는데 첫 차가 늦다고 아쉬워한다. 그래도 이렇게 며칠만 하면 무언가를 새롭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전과는 다른 시각의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계속 해서 읊조렸다. 무엇인진 몰라도 그간 고민이 많았으리라.


한 여자가 평소 알던 시장 떡집에 전화를 건다.

“네, 거기 떡집이죠. 내일 몇 시에 출근하시나요? 사장님 아침에 쌀 씻는 모습부터 취재 촬영을 조금 하고 싶어서요. 아…. 아침엔 부담되신다고요. 사장님처럼 고운 분이 또 어디 계신다고. 아, 끊지 마시고 잠깐만…” 뚝.


“네, 거기 떡집이죠. 내일 몇 시에 출근하시나요? 사장님 아침에 쌀 씻는 모습부터 취재 촬영을 조금 하고 싶어서요. 아…. 요즘은 그렇게 다 하지 않으신다고요….” 뚝.


“네, 거기 떡집이죠. 내일 몇 시에 출근하시나요? 사장님 아침에 쌀 씻는 모습부터 취재 촬영을 조금 하고 싶어서요. (드디어)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 7시쯤 도착할 것 같아요. 최대한 방해 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할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이후 언제 늘어져 있었냐는 듯 능청스러운 말투와 목소리로 재빠르게 몇 군데 섭외를 마친다. 


둘은 다시 노트북 열어 일정표와 기획서를 써나간다. 아침엔 어디를 갈 것인지, 어떤 모습을 중점적으로 관찰할 것인지,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변수는 예측하면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며 여러 상황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느 회사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본떠 “취재는 살아보는 거야”를 외치며 검은 머리와 갈색 머리 여자 둘의 전통시장 12시간 취재기가, 그렇게 시작됐다.


/


-아침 7:00


6시 50분, 익산 서동시장 앞에 도착했다. 시장의 아침은 예상대로 분주했다. 길 한쪽은 모두 트럭이 자리했고 사람들은 물건을 내려 옮기기 바빴다. 무거운 짐짝을 턱턱 나르는 그들의 모습에, 혹시 방해될까 주뼛거렸다. 호기롭게 도착한 것과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곁눈질하며 뱅뱅 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바쁘시네요. 다들.”

“그러게. 어제 전화했던 떡집 먼저 가볼까요? 어디죠?”

“거기였어요. 제일 바빠 보이던 집.”

“쉽지 않군요.”


/


쫘악, 쫘악. 판형으로 하면 몇 절정도 될지 궁금한 큰 떡을 한 남성이 일정한 크기로 잘라내고 있다. 모락모락 김이 천장까지 올라가면서 남성의 시야를 가리는데,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떡이 잘려 나가고,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랩으로 칭칭 감아 일렬로 세워둔다.


슬쩍 우리를 보더니 어떤 걸로 주냐고 물었다. 집중하여 떡을 자르던 얼굴과는 다르게 따듯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는 그 미소에 긴장이 풀려 어제 전화 드린 잡지사이고, 시장 취재하러 왔다고 말했다. “사장님 일하시는 모습을 찍어도 되나요?”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출연한 경험이 있던 이 떡집 사장님 둘은, 쿨하게 얼마든지 찍으라고 말했다. 아침부터 수지맞았다. 우리만 잘하면 된다.


/


떡집은 4평 남짓 되어 보였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각종 재료와 도구가 빼곡히 차 있었다. 괜히 무엇 하나라도 살짝 쳤다가 와장창 다 떨어지는 사고를 칠까 봐, 나의 몸집 크기를 계산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평소 경차를 끌던 운전자가 갑자기 대형 세단을 몰고 이중주차가 가득한 아파트 지하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장님은 모자(母子) 관계였다. 가족이라는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필요한 단어와 단어만 던지며 각자가 맡은 일을 했다. 의사소통에 들이는 노력을 최소한으로 한 효율적 태도와 완벽한 분업화. 한두 해 같이 일한 것이 아니군. 누군가 그랬지, ‘동업은 분업이 잘 되어있을 때만 싸우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런 점에서 이들은 꽤 사이가 좋은 동업자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명이 일하는데 떡의 종류가 꽤 많이 나와 있다. 심지어는 송편까지 있다.

“오늘 송편 주문이 있었나 봐요? 추석도 아닌데.”

“그냥 먹고 싶으면 가끔 만들어 놔. 소매로 파는 거지.” 그렇다. 추석이 아니더라도 송편을 먹고 싶다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건 무슨 떡이에요? 처음 보는데.”

“팥떡. 팥 기피.”

“팥? 근데 왜 흰색이에요? 팥은 안에 들어있는 건가?”

“팥으로 기피낸 거라니께.”

대충 예상해보건대 팥의 표면이 붉은색이고 안쪽은 흰색이니, 어떤 가공 단계를 거친 걸 기피라고 하나보다, 하고 “아! 그렇구나! 팥 기피! 하하.” 아는 척을 했다. 한 번 더 물어보면 사장님이 날 귀찮아하실 것 같았다….


이윽고 얼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사장님이 손목에 검은 봉지를 걸어주셨다. 손가락으로 살짝 열어보니 팥 기피 떡이 보인다. 이게 또 뭐람, 우리는 재빨리 지갑을 열고 현금을 찾았다. 오, 웬일로 오천 원짜리 한 장이 있다. 사장님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드리려는 동시에 나는 등짝 한 대를 맞았고, 주황색의 율곡 이이 그림은 다시 내 가방으로 들어왔다. 사장님은 마치 각설이 내쫓듯 우리를 옆집으로 떠밀었다.


-아침 8:00


“여긴 뭣 하러 데려와?” 김치 가게 사장님이 떡집 사장님에게 소리쳤다.

“나 이거 해놓고 병원 좀 다녀와야혀. 그 아가씨들 물어보는 거에 답만 좀 해주고 있으면 댜.”

“어딜 간다고? 그럼, 장사는 누가 허고?”

“머시마 있자녀.”

떡집 사장님은 마치 이웃에게 아이 맡기듯 우리를 부탁했고, 40세쯤 된 둘째 아들을 ‘사내아이’의 사투리인 ‘머시마’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머쓱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 뒤, 어색함을 깨기 위해 가장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가게 이름이 왜 영광 김치예요?” 일하고 있던 4명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가 고향이 전남 영광이라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는 79세로, 8년 차 영광 김치 사장이다. 이전에는 익산 중앙시장 2층에서 통닭을 팔았다고 하는데, 곁들여 먹으라고 조금씩 만들어 주던 김치가 소문이 나 점점 김치 가게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제는 김치와 함께 먹으면 맛있는 코다리 튀김을 조금씩 만들고 있었다.


“여기 같이 일하시는 세 분은 사장님 따님이신가요? 며느리이신가요?”

“다 딸이지! 며느리가 이걸 같이 하겄어!” 영광에서 온 사장님이 호통쳤다. 세 명의 따님이 모두 하하 호호 웃었다.


“아까 아가씨가 떡집에 있는 거 봤는디, 지호인줄 알았잖어. 지호. 우리 지호가 전주에서 간호사 하는디, 아가씨랑 똑같이 생겼어. 그래서 한참 쳐다봤네. 나이도 비슷하겄어.” 지호는 그녀의 둘째 손녀였다. 배추를 씻던 세 딸은 내가 지호와 얼마나 닮았는지 한 마디씩 얹었다. 그리고는 지호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모의 조카 사랑은 유별나다고 했던가. ‘지호가~’, ‘우리 지호는~’ 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닮은 꼴 지호가 조금은 부러워졌다. 곧 서른이 될 만큼 다 큰 조카 이야기로 이렇게 화기애애한 이모들이 있다니.


“김치 좀 주면 가져 갈 텐가? 냄새나서 안 가져가려나?” 사장님이 물었다. 

“에이, 안 가져가긴요. 김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근데 공짜로 받기는 좀 그렇죠. 한 포기 사갈게요.”

“뭘 사!” 그녀가 다시 호통쳤다.

“손녀딸한테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받아 갈 텐가?” 

“사장님이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저도 우리 할머니가 주신다고 생각하고 받을게요.”

“좋구먼. 얘야, 여기 손녀딸 김치 좀 싸줘라.”


단발머리의 딸이 봉지에 한 포기를 쏙 넣었다. 그걸 보던 사장님은 큰 놈으로 골라 줘야지, 아무거나 준다고 한 소리 했다. 딸은 어련하시겠냐며 이것도 큰 놈이었다고 바로 맞받아쳤다. 나는 큰 놈인지 작은 놈인지 구분할 수 없는 배추김치 한 포기의 봉지를 들고 서서, 내가 이 김치를 받아도 되는지 생각했다. 아무래도 김치를 공짜로 받을 만큼 잘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손녀딸이랑 닮아서 주시는 건가. 짧은 고민을 하다가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에 사는 우리 할머니도 밖에서 나를 닮은 아가씨를 보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우유 사탕이라도 하나 꺼내 줄까 상상했다. 잘 먹겠습니다. 아침부터 팥 기피 떡에, 배추김치에, 양손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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