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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마이크 May 15. 2023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 있다는 것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풍경, 전통시장

시장을 생각하면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든다. 전통시장의 위기가 오래전부터 언급되어왔기 때문인데 ‘지역 활성화’를 논할 때마다 빠짐없이 소환되곤 한다. 본래 시장의 역할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지만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시장의 자리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곳이 많아 과거 상권의 중심지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상인과 거주민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라는 점을 나타낸다. 


중요한 건 가치판단의 배경은 뒤로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장소라는 점이다. 한동안은 탐방객의 시선으로 시장에서 장을 보고 40년 된 가게에서 점심을 먹는 일상을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 단지 살고 있다고 해서 잘 아는 건 건 아니다. 이미 익숙해진 감각들로 무뎌지고 퇴화한 현지인이 외지인의 산뜻한 시선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도시를 마주하고, 지역의 희로애락에 따라 맞춰 걸으며 함께 호흡해야 하는데 소통의 매개를 전통시장으로 정했다.


오랜만에 시장을 산책하며 친구들을 만났다. 취재하며 골목마다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이웃이 생기고 공동체가 생긴다는 의미를 몸소 알아가는 중이다. 먼저 최윤경 선생님을 찾아갔다. 뒤에 인터뷰에서 자세히 나오겠지만 선생님은 1945년생으로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학원을 운영하는 분이다. 19살에 사업을 시작하고 12권의 책을 낸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연륜 깊은 N잡러다. 


인터뷰 사진을 액자에 담아 건네자 선생님은 고맙다며 <재난의 길목에서>라는 시집을 선물로 줬다. 내 반응이 시큰둥했는지 또박또박 본인이 “직접 쓴 시”라고 강조하며 이야기했다. 익산역 폭파사건 당시 겪었던 심경을 적은 시고 익산역 앞에 시가 적힌 비석도 세워졌다며 지금은 절판돼 익산에서는 대한서림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 현재로서는 본인의 마지막 시집이고, 이걸 쓸 당시에는 익산시에서 인터뷰도 여러 번 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선생님을 간신히 말렸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2시간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의 초능력을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말이 너무 많은 어른을 만나면 잠시 아득해지기에 재빨리 짐을 챙겼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또 놀러 와!” 아마도 선생님은 이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인 모양이다. 동네를 탐방하는 시간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다. 특히 무언가 몰두하고 집중하는 사람에게 나오는 후광 같은 거 말이다. 인터뷰할 때 최윤경 선생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발견했었다. “네, 자주 올게요. 시집도 감사해요.”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미용학원을 나와 시장 쪽으로 향했다. 다음 액자의 주인공은 시장기름집 임경숙 사장님이다. 무더운 여름날 첫 번째 인터뷰로 만났는데 어느덧 겹겹이 껴입는 날씨가 됐다. 30년째 한결같이 깨를 볶고 기름을 내리던 취재의 순간을 떠올리면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그때 못 샀던 참기름을 드디어 사 갈 수 있겠구나! 기대하며 시장 2층으로 향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께 당당히 참기름을 주문하고 계산하려고 하니 그냥 가져가라며 한참을 실랑이했다. 다른 손님한테는 비밀이라며 날리는 윙크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음에 꼭 다시 온다고 제값을 낸다는 약속을 하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시장 초입에 있는 과일가게에 도착했다. 제철 과일이 궁금할 땐 종종 시장으로 간다. ‘매일청과’ 현수막이 달린 1톤 트럭이 오늘의 목적지다. 근처에 가면 “여- 또 왔네.”하고 푸근한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의 성함은 김상구다. 김상구 사장님이 중앙동을 열심히 휘저으며 취재할 때 안면이 터서 단골이 되었다. 


상구 사장님은 1964년생으로 과일 장사만 30년째 하고 있어 이 구역 달콤 감별사다. 항상 반가운 얼굴로 시장 입구에서 반겨줘 내 기준 중앙시장 마스코트다.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 가끔 꿀사과 한 조각도 얻어먹을 수 있다. 오늘은 약간의 수다를 마치고 딸기와 오렌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사장님이 골라준 딸기가 단단하고 맛이 좋았다.


여기까지가 시장 골목을 산책하며 만난 이웃 사람 이야기다. 취재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인사 나누는 이웃이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알고 익명에서 벗어나 인생 스토리까지 엿듣다 보니 동네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신기한 경험을 지금부터 나눠보려고 한다.


글. 로잇스페이스

사진. 이가영, 익산 원도심 여행자, 로잇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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