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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Jul 03. 2022

[경추 르포] 내 목이 겸손해졌다.


새벽 2시 반, 누우면 더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섰다 앉았다하며 쓰기 시작했다. 퇴고처럼 몰두 본능을 자극하는 작업을 할 수 없어서 매우 날 것의 ‘경추 르포’가 될 예정이다.






일주일이 되었다.

그간 집필을 한다고 새벽 4시에 꼬박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거드름을 피운 날이었다. 결혼기념일.  좋은 레스토랑에 점심을 먹으러 가려면 화장도 잘 먹어야 하니까(?) 까짓꺼 딱 하루만 늦잠자자, 하고 마음 먹은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결혼기념일에 서로에게 선물을 하지 않는다.  함께 축하할 날이니까 함께 맛있는 것 먹으면서 앞으로의 1년을 파이팅하면서 보내는 게 다이다. 선물을 못받는 게 가끔 아쉬워도, 나도 안하니까 할 말이 없는 상황. 나의 비뚠 마음을 비꼬려는 것이었을까. 바로 그 날 아침, 반갑지 않은 선물이 도착했다.


어, 목을 들어올릴 수가 없다.

, 어깨에 오는 통증이야 빤하다. 평생을 달고 살았으니까. 그 날은 달랐다. 비싸다는 경추베게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처럼  목에는 과분한 기능성 베게였다. 엄마가 사다준 **등의 경추베게를 베면 10분이 안되어 속이 울렁거리고 두피가 저려온다. 돼지 말고  목에는 오래되서 루핑이 힘없이 스러지는 비루한 수건말이가 그나마 맞는다. 그런데  사이 무슨 사달이 있었는지 수건말이 위에 놓여있던  목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 이건  힘으로  들어올리겠다. 생각이  눈을 가리웠다. 힘을 주자  아래 오른쪽 승모근과 왼쪽 승모근이 모이는  지점, 강렬한 통증이 전해졌다. 가장 비슷한 통증으로 떠올릴  있는  두어달  응급실에서 혈관을 못찾는 간호사 덕에 서너번 바늘에 찔리다가 설상가상 간호사가 주사를  손까지 놓쳐 플라스틱 주사선이 혈관에서 튕겨오를 때의  충격,  통증, 공포. 칼은  맞아봤지만 아마도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  속을 헤집고 다시 빠져나가는  통증은 어느정도 유사함이 있으리라. 그런 통증이 목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 삶의 모토인 나는 통증은 잘 참는다. 나 때문에 이 기념일을 망칠 순 없으니까, 웃고, 웃으면서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마치고나서야,


“오빠, 목이 너무 아파.”


증상을 듣고 담인 줄 알던 남편은 1주일 정도 쉬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어디 아프다고 얘기하는 게 낯설지도 않을 거다. 내가 통증에 무뎌진 만큼, 남편도 나의 통증 이야기에 무뎌진 편이다. 하긴, 나는 아프다는 사실을 꽤 아무렇지 않게 전하는 편이다. 평온한 얼굴로 차를 우리면서 ‘오빠 오늘은 편두통이 꽤 심하네.’, 차 조수석에서 앞 차량의 번호판을 응시하며 ‘코가 막혀서 숨을 못 쉬겠네. 물에 빠진 느낌이야.’ 무심한 표정으로 세상 죽겠다는 사람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겠지. 그렇지만 이런 덤덤함은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니까.


결국 저녁께 정형외과를 찾았다. 정형외과에서 주의할 점은 첫 진단에 놀라지 말 것. 그래서 하자는 치료를 덥석 받는다고 하지 말 것. 경추 엑스레이 결과를 보고는 놀라기보다는 의아했다. 내가 알던 경추 모양과 분명 어딘지 모르게 다른데, 예전에 진단받았던 일자목은 아니었다.  c자 컬이긴 한데 굉장히 겸손해보이는 인상. 엑스레이를 환자인 나도 볼 수 있게 크게 띄워놓은 의사 인상은 심각하고, 나만 얼떨떨하다.


“우리 경추는 원래 고개를 살짝 하늘로 들어올리게 하는. c자인데요. 환자분은 역 c자형이세요. 일자목에서도 더 진행되면 이렇게 됩니다. 통증으로 고생 좀 하셨겠네요.”


콩나물 시루처럼, 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인 경추를 보고 되물었다. ‘네? 이게 제 목이라고요?’ 엑스레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을 증명했다. 남편은 신경을 더 써줬어야했는데 그냥 담인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내 몸은 내가 관리를 해야하는데 미안해하는 남편 앞에서 함께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 하늘을 못 보게 되니까 자꾸 위를 올려다보고 싶다. 역시 상실은 그리움으로 치환된다.


물리치료, 도수치료로 좀 덜 아프게 해드릴게요.라는 마법같은 말에 넘어가서 두번째 주의사항도 어겨버렸다. 어느새 물리치료실 1번 침대에 누워있다. 뜨끈한 물주머니를 목에 받쳤다. 받을수록 피부가 가려워지는 저주파 치료, 느낌은 없는데 분명 치료를 하고 있다는 이름 불상의 기계 아래에 목을 길게 빼고 누운지 40분. 이번에는 도수치료 차례라고 했다. 요즘은 대부분 실비보험을 들고 있으니까 특별히 묻지 않고 가격만 말해준다. 10만원. 이정도는 보험의 일일 통원치료비로 커버가 되니까 나도 큰 고민없이 탈의실에서 상의를 갈아입는다. 도수치료 40분 1회에 10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닌데. 보험이라는 장치로 서로 간에 마찰없이 치료에 협의를 이룬다는 건 과연 행운일까, 불행일까.


“안녕하세요, 책임지고 치료 잘해드릴께요.”


도수치료사는 자신이 12년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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