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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11. 2021

글 배우기



“이거 좀 읽어줘 봐.”



매일 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은 보통 아이가 고르는데, 책 표지에 제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는다. 아니, 읽는 흉내를 낸다. 좋아하는 책은 기본 열 번은 읽다 보니 제목을 그림처럼 외워버린 거다. 처음 읽는 책은 커버 그림으로 내용을 유추해서 제목을 짓는다. 예전에는 글자 수 상관없이 마음대로 문장을 만들어 읽(?) 더니 이제는 초, 중, 종성의 글자 구성을 깨달은 것 같다. 글자 수에 맞춰 제목을 짓는다. 글자에 대한 센스가 생기고 있다.



말이 조금 늦었던 아이가 또래와 비슷한 시기에 글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러나 글자만큼은 조금 늦게 배웠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글자를 배우게 되면 세상이 남겨둔 수많은 지식을 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지만, 그만큼 텍스트가 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대상을 글자로 변환해서 머리로 읽기보다 직관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자꾸만 글자를 가리키며 읽어 달라는 아이에게 더 이상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미룰 수가 없다. 너도 글의 세계에 입문했구나.



나는 엄마가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노선도에 쓰인 역 이름들을 보다 보니, 어느 날 글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글은 조형적으로 예쁘다. 글자에 따른 음의 분절이 잘 되어있어서 원리만 깨우치면 읽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일찍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글로 기록될 수 있음을 알면서 활자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읽는 사람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 맞춤법에 신경 쓰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맞춤법을 틀린 사람의 글을 보면 고쳐주고 싶다. 교정 해주겠다고 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참느라 더 힘들다. 호감이 있던 사람도 맞춤법이 마구 틀린 메시지를 보내면 그 즉시 호감이 반감되곤 했다. 글자에만 집중할 뿐, 글을 쓴 사람의 의도나 글의 맥락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미약했다. 글의 정확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만 잦아졌다.



이런 내가 쓰는 사람이 되면서 글자에 더 예민해졌다. 다만 그 대상이 내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로 향했다. 난생처음으로 글을 다듬는 방법에 대한 책을 샀다. 책과 번갈아 읽는 내 글이 비문, 오문으로 잔뜩 채워져 있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사자 없는 산에서 왕 노릇하는 토끼였던 것이다. 내 주제에 남의 맞춤법, 문장을 운운하다니. 글쓰기는 사람을 매우 겸손하게 만든다.



요즘은 글을 쓰며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글자 하나 고르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은, 는, 이, 가, 을, 를, 의, 에… 하나에도 글의 맛이 달라진다.



"엄마, 벌은 집짓기 선수야. 개미는 집짓기 선수야."

"맞아. 벌은 집짓기 선수야. 개미도 집짓기 선수야."



아이는 처음, 나는 다시 한글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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