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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21. 2021

토란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는



27日






거무죽죽한 털이 달린 토란을 열심히 까는 엄마. 차례를 마치고 토란국을 내어주시며 양지랑 무 넣고 시원하게 끓였어, 맛있어 먹어봐. 하는 엄마는 토란국을 드시지 않는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 토란은 슬그머니 옆으로 밀어놓고 국물만 홀짝거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토란을 표현하는 글을 찾으면 감자 맛이 난다는 말이 제일 많다. 이럴 거면 감잣국을 끓이지. 올해는 과감하게 건의를 했다. 옛날처럼 구황작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시절을 기리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감잣국을 끓입시다. 캐면 줄줄이 나오는 토란이 자손 번영을 뜻한다면 감자도 줄줄이 나오잖아요. 그냥 감잣국을 끓입시다! 아빠는 ‘그래도 토란으로 끓여야지. 감자는 외래종이잖아.’ 하시는 거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게 언젠데, 19세기야, 아빠. 차례상에 올리는 나박김치에 고춧가루도 19세기에 들어왔다고, 이때 노란 머리 선교사가 귀화를 했어도 지금이면 염색체가 몇 번이 쪼개졌을 시간인데, 어떻게 감자는 외래종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아빠는 딱 잘라 말씀하신다. ‘그래도 토란으로 끓여야지.’ 고집스러운 아빠가 식사를 마친 자리에도 토란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샤인 머스캣과 애플망고가 재배되는 시대에 토종과 외래종을 나누는 아빠는 구세대인 걸까. 아니, 오히려 아빠가 젊은 세대일 때 그리고 내가 그런 젊은 아빠의 어린 딸일 때, 우리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보다 물 건너오면 다 좋은 것이여-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90년 대 큰집은 저 멀리 남미 파라과이에 살았다.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사람 몸집만 한 검정 이민 가방에 시퍼런 바나나 송이를 몇 개씩 담아 오셨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초록 바나나가 익을 때까지 그림에 떡처럼 몇 주를 보고만 있었다고 얘기하면 과연 믿어줄까. 자고 일어나면 바나나가 어느 귀퉁이라도 노래졌을까 득달같이 거실로 나와봤다고 하면 ‘그냥, 마트 가서 사 먹지 그랬어요.’ 하지 않을까.



옛날, 동남아 패키지여행을 가면 가이드는 귀국 편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경고했다. No 두리안. 기내 반입 절대 금지. 어겼다가는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 상상을 못 한 아줌마들이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과일의 왕을 몰래 가방에 담았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맛이라도 보게 하려고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버스 짐칸에 가방을 넣었다. 공항 가는 길에 화학 테러급의 지독한 냄새 공격을 받고 나서야 이 왕은 자기 영역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는 않는가 보다 절실히 알게 되었다. 하여간 외래종은 호기심과 전리품(?)의 대상이었다.



국물만 마셔서 점점 드러나는 알토란, 이백여년 전 들어온 외래종에게 밀려나는 녀석이 서글퍼도 보인다. 감자를 보는 토란 입장에서야 굴러온 돌이 박힌  빼는 격일 테니까. 끝내 토란이 목에서 넘어가지 않는  보니 내가 토란을 먹는 마지막 세대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속 있게 속이  차다는 의미로 쓰이는 ‘알토란  동그랗고 뽀얀 살의 토란이라는  아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겠지. 국경이 희미해져 가는 글로벌 시대에 수많은 토종들도 희미해져 간다. 차례의 의미도 희미해져 간다.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는 토란에 아빠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조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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