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취 생활의 시작

요코하마와 도쿄를 오가는 매일

by 단미

신입사원 연수 동안 살았던 곳은 회사에서 제공해준 기숙사 방이었다. 다다미 4장 정도, 한국으로 치면 2평 정도의 작디 작은 방이었다. 옷가지 몇 벌과 캐리어 두 개만 놓아도 방이 꽉 차 키가 작은 내가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 남았다. 짐을 다 넣을 수가 없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한 달 동안 방을 하나 더 빌려 거기에 보관해두었다. 그러다 보니 1달 내내 기숙사는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매일 밤 짐더미 사이를 헤치고 침대에 누우면서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탈출이 시급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였다. 도쿄는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면 출근이 힘들 것 같았다. 결국 사원 기숙사가 위치해 있었던 요코하마 츠루미에 방을 구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곳이었고, 전철 케이힌토호쿠선으로 30분이면 도쿄역까지 갈 수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방 구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 때까지 평생 기숙사가 아닌 방을 구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뭘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친한 일본인 동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스스로의 기준을 정해 나갔다. 2층 이상, 햇볕이 잘 드는 곳, 화장실과 욕실이 분리되어 있고 수압이 좋은 곳 등등.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다 새로운 기준이었다.


2주간 주말마다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다섯 번째로 본 집을 바로 계약하게 되었는데, 한적한 주택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신축 원룸이었다. 1층이었지만 언덕 아래가 다 내려다보여서 답답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방 벽지가 하늘색이라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열쇠를 받았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일본에 진짜 내 공간이 생긴 거였다. 신입사원 연수도 끝나고 사원 기숙사에서 짐을 옮기는 날, 아직 덜 푼 박스들이 쌓인 방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한참동안 언덕 아래 풍경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내가 직접 고르고,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 갈 나의 공간. 그 공간에서는 요리도 할 수 있고, 친구도 부를 수 있고, 마음껏 몸을 뻗을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이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5월부터 본사로 출근이 시작됐는데, 통근이 문제였다. 집에서 츠루미 역까지는 걸어서 13분, 거기서 전철 30분, 도쿄역에서 회사까지 또 15분. 도어투도어로 약 1시간. 이 정도면 도쿄 직장인으로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는데, 아침 러시아워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매일 아침이 전쟁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완전히 끼여서 가는 30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여름에는 찜통 더위까지 더해져서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반쯤 지쳐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여성전용칸이었다. 케이힌토호쿠선 3호차에 평일 아침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만 운영하는 칸이 있었다. 사람이 여전히 많았지만, 여성들만 탈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은 편하게 출근할 수 있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몇 달이 지나니 러시아워의 고통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전철을 타고, 도쿄역까지 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언덕 위 하늘색 방에서 일어나 전철에서 흔들리며 회사로 향하는 일상. 돌이켜보면 그때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2평짜리 기숙사를 벗어나 나만의 공간을 갖고, 매일 만원전차를 타고 도쿄의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진짜 자취가 시작됐다. 작은 것들이지만 하나하나가 내 삶을 만들어가는 조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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