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회복을 위한 터키 음식 만들기
아파서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운 날이면,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레 죽 한 그릇 끓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아프면 늘 엄마표 죽을 먹었다. 당근, 양파, 마늘 등을 잘게 다져서 넣은 야채죽에 위장의 상태에 따라 계란, 오징어, 다진 소고기 등이 가감되기도 했다.
“엄마, 죽 먹고 싶어.” 하고 어리광을 부리면 어느새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이 올라오고 콧잔등에 맺히는 땀을 닦으며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병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기분이 들었다.
알러지 때문에 연달아 재채기를 하며 콧물을 흘리는 남자친구를 보며 타지에서 아프면 유독 서럽다는 말이 생각났다. 혹시 한국과 터키에서 아플 때 먹는 음식이 전혀 달라서 약해진 몸과 마음을 100% 위로해주고 회복시켜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되어 그에게 물었다.
“아플 때면 생각 나는 음식이 있어? 어떻게 만드는지 적어줘.”
못내 그리웠을 터키식 수프들이 그의 입을 통해 그려졌다. 우리나라 삼계탕과 비슷해 보이는 닭고기를 푹 고아 만든 수프, 양 내장을 넣고 매운 향신료와 함께 끓인 수프 등 원기 회복에 좋은 고지방 고단백 음식들이었다. 자칫하면 고기 잡내가 날 것 같아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듯한 메뉴들 다음으로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메뉴가 등장했다. 바로 터키 사람들이 사랑하는, 터키 음식에 빠질 수 없는 토마토 페이스트로 만든 토마토 수프였다.
토마토 수프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올리브 오일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볶아주다가 밀가루 한두 스푼을 넣고 섞어준 뒤 물을 붓고 끓이면 되고, 기호에 따라서 양파, 버섯 등을 넣어줘도 좋다. 그가 적어준 레시피 종이를 들고 부엌에 내려가 요리를 시작했다.
레시피를 보며 요리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남자친구가 토마토 페이스트를 요리할 때면 부엌이 온통 새콤하면서도 달큰한 향으로 가득 찼는데 내 수프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맛도 나지 않았다.
‘왜 아무런 맛도, 아무런 향도 안나지???’
소금도 넣어 보고 향신료도 넣었지만 구제할 길이 없었고, 더 손댔다가는 수프가 아닌 괴생명체가 탄생할 것 같아 남자친구를 불렀다. 그는 토마토 페이스트를 태울 것 같이 더 기름에 볶아줘야 제대로 맛이 나온다면서, 처음인데 정말 잘했다며 수프 한 그릇을 야무지게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남자친구는 한참을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배탈이 난 것이었다. 토마토 페이스트는 충분히 조리하지 않으면 배탈이 나기가 쉬운 음식인데, 수프를 한입 떠먹은 그 순간, 곧 화장실로 직행할 것을 예감했다고. 하지만 여자친구가 아픈 사람 걱정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만든 낯선 나라 음식을, 그 마음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아픈 몸을 달래주고 싶었던 나의 첫 토마토 수프는 위로는커녕 멀쩡하던 그의 위장마저 탈탈 털어버렸다.
한국에서도 터키에서도 사람들은 아플 때 죽이나 수프처럼 힘들여 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떠올린다. 씹을 힘도 없고 입이 써서 맛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여러 재료를 넣고 푹 끓인 영양가 있는 국물 요리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중에서도 평소 영양가 많다고 생각했던 식재료가 들어간 요리가 더 생각나기 마련인데, 한국인들이 아플 때 보양식 삼계탕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와 다르게 양고기를 자주 먹는 터키에서 온 남자친구는 양 내장을 넣고 푹 끓인 수프를 먹으며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고영양 고단백 식재료만큼 중요한 요소는 국물이다. 뜨끈한 국물은 분명 목구멍을 타고 위장으로 갈 뿐인데 왠지 마음까지 그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오랜 시간 끓이며 우려낸 정성이 우리에게 가장 잘 전달되는 온도는 분명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뜨끈한 국물의 온도일 것이다. 국물이 마음에 건네는 위로가 만국 공통 특효약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한국과 터키에서 유효한 것은 확실하다.
여기에 만드는 사람의 걱정과 빨리 낫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합쳐지면 완벽한 기력 회복 음식이 된다. 일찍부터 자취를 시작했던 남자친구는 아플 때 혼자 치킨 수프, 토마토 수프를 끓여 먹는게 익숙했다고 한다. 그가 직접 만든 수프보다 더 맛있을 순 없겠지만, 마음을 더 따뜻하게 위로하고 기력까지 회복해주는 토마토 수프를 만들어 줄 그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