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와서 요리를 시작한 초보 요리인은 블로그와 유튜브 레시피 맹신자가 되었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한두 가지 재료가 없는 건 괜찮겠거니 하며 그냥 요리해놓고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맛이 이상하지?”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과정을 정확하게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 온라인 스승님들의 레시피를 국법이자 절대복종의 규칙으로 삼게 되었다.
예를 들어, 소스를 만들 때 간장을 3 숟가락 넣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해보자. 간장은 점성이 없어서 손목을 살짝만 움직여도 바로 숟가락에서 흘러넘쳐서 소스 보울에 과하게 들어갈 때가 많다. 그 순간부터 초조함이 시작된다. 몇 방울이라고 하지만 사실 1 숟가락 더 넣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저 간장이 내 요리를 알 수 없는 맛의 세계로 끌고 가 버릴 까 봐, 회생 불가능한 음식이 될 까 봐 긴장하곤 했다. 망치면 다시 수습하면 되지 하는 자신감은 요린이가 가지기엔 너무도 오만한 마음이었다.
맛없는 요리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기에, 레시피와 꿀팁을 몇 번 해보고 나서는 공장의 자동화시설처럼 기계적으로 레시피 순서에 따라 요리를 했다. 프로그래밍된 양, 시간, 순서를 맞춰서 음식을 찍어냈다.
가장 먼저 익숙해진 공정은 밥 짓는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던 밥이 영국에 오니 자꾸 생각났다. 다양한 메뉴들이 각축전을 벌일 때 한 번도 그 경쟁에 껴본 적이 없던 흰쌀밥이었다. 어린 시절 게임 속 “깍두기”처럼 공짜 거나 1,000원에 추가하던 쌀밥이 영국에서 메인 요리로 격상되었다.
영국에서 주로 쓰이는 Basmati rice(인도 요리에 쓰이는 길쭉하고 점성이 없는 쌀)와 Long grain rice (모양은 한국 쌀과 비슷하나 점성이 없는 아시아 남부 지역 쌀)로 지은 밥은 30년간 촉촉하고 쫄깃한 밥맛에 길들여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중국 마켓에서 직접 Sushi rice 또는 동북미로 불리는 쌀을 산 후 전자레인지로 밥을 짓는 법을 검색해서 연습했다. 평소에는 10년 차 셰프인 남자친구가 요리를 담당하지만 밥을 짓는 것만큼은 한국에서 온 요리 봇에게 맡겨 두라고 했다.
하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한국식 밥이 무척 좋았던 남자친구는 밥 짓는 레시피를 궁금해했고, 다른 요리를 만드느라 요리 봇이 바쁜 틈을 타서 밥을 지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엄청 간단해. 쌀 한 컵, 물 한 컵 넣고 5분 돌리고 1분 뜸 들이면 돼. 섞고 나서 다시 5분 돌리고 1분 뜸 들이기!”
말하지 않아도 뿌연 쌀뜨물이 나오지 않게 깨끗이 씻어서 그릇에 담는 그를 보며 또 하나의 듬직한 밥 짓는 로봇이 탄생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딱 5분 동안 지속되었다.
철-컥 하고 전자레인지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외쳤다.
“5분 돌리고 1분 기다려야 해! 안돼!!! 열지 마!!! 5분 돌리고 1분 뜸!! 안 그러면 밥이 망한단 말이야.”
이미 늦었다. 분명 5분 돌리고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두고 1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건만 그는 야속하게 버튼을 눌러서 전자레인지 문을 열어버렸다. 이미 수증기가 다 빠져나간 후에 문을 닫아 봤자 밥이 될 리가 없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른 요리를 완성하고 있는 동안 그는 나머지 공정을 수행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말 망한 줄 알았던 밥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꽤 그럴싸한 밥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뜸을 들이지 않았는데, 뚝뚝하지도 질지도 않은 딱 맞는 밥이 되었다. 그는 말했다. "뜸 들이지 않아도 밥은 돼. 밥 짓는 데에 꼭 방법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닐꺼야.”
한국식 밥이니까 한국인인 내가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고 내 방법만을 고집했다. 요리에는 수천수만 가지 레시피가 있고, 만드는 사람마다 만드는 순간마다 다른 과정을 거치고 새로운 맛이 되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듯, 도로 가든 모로 가든 서울로 가는 방법도 엄청 많다. 몇 페이지를 넘기며 블로그를 검색해서 얻은 밥 짓는 방법 역시 한 가지 방법일 뿐이었다. 5분 익히고 1분 뜸을 들이지 않아도 밥은 맛있게 된다.
실패하지 않던 방법 한 가지를 익히고 나서 그 방식만을 고집했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내가 만든 밥보다 더 간편하고 맛있게 밥을 짓는 방법을 발견했다. 요린이가 배워야 할 것은 레시피만이 아니라 유연성과 포용력도 포함이 아닐까 싶다.